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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533년경 중국으로 가던 유럽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선교 사업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615년에 예수회가 파견되어 정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베트남의 사도’로도 불리는 예수회의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는 1623년 성탄절에 이곳에 도착하여 1645년까지 추방과 재추방을 거듭하면서도 수많은 베트남인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645년부터 1886년까지 그리스도교 신자를 탄압하는 칙령이 53건 반포되었는데, 거의 3세기에 걸쳐 혹독한 박해가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약 13만 명이 희생되었다. 박해가 계속될수록 더 잔혹해졌는데, 뜨득 황제(Tu Duc, 1847~1883년 재위) 통치 중에는 선교사들을 체포하기 위해 거액의 상금을 걸고 사제와 외국인 교리 교사들을 학살하였다. 베트남 출신 교리 교사들의 뺨에는 ‘거짓 종교’를 뜻하는 ‘타다오’(Ta dao)라는 글자로 낙인을 찍어 대중의 경멸을 받도록 했다. 신자들은 재판관 앞에서 십자가를 짓밟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과 떨어져 추방되거나 처형당했다. 17세기에 시작된 박해가 계속 이어지고 19세기에도 더욱 잔인한 박해가 계속되자 프랑스는 이를 막기 위해 1862년 베트남을 침략했고, 1883년에 베트남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박해를 종식하였다. 이때까지 박해를 받고 순교한 이들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900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64위가 복자품에 올랐다. 그리고 1906년 5월 20일에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는 베트남에서 순교한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8위를 시복하고, 1909년 5월 2일 20위의 순교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1951년 4월 29일 네 번째로 25위의 순교자가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88년 6월 19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117위 베트남의 순교복자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인과 에스파냐 출신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선교사 11위 그리고 프랑스 출신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10위가 포함되어 있다. 신분별로 보면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들, 50위의 사제들(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 엠마누엘 응우옌 반 찌에우(Emmanuel Nguyen Van Trieu)는 1756년 오늘날 베트남 북부를 지칭했던 통킹의 푸쑤언(Phu Xuan, 오늘날 베트남 중부 다낭[Da Nang] 북쪽의 후에[Hue])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전사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15살이 된 1771년에 일찍이 군에 입대하였다. 가톨릭 신자로서 15년의 군 복무 중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1786년 서른 살의 나이에 제대한 그는 수도 생활에 헌신하고자 했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다낭(Da Nang) 남쪽 호이안(Hoi An)에 설립된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793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가 1798년 8월 7일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이었던 깐틴 황제(Canh Thinh, 1792~1802년 재위)의 칙령이 반포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와 사제들을 수색하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면서 울고 있는 늙으신 어머니에게 “하느님께서 저에게 그분을 증언할 영광을 주셨습니다. 더는 울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십시오.” 하고 작별 인사를 드렸다. 처음에 그는 코끼리 발에 깔리는 형을 선고받았으나 1798년 9월 17일 후에의 처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1803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지역 주교에 의해 회수되어 즈엉선(Duong Son) 교구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엠마누엘 응우옌 반 찌에우 신부는 1900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리고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116위의 동료 순교자들’의 일원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을 통해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며,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17일 목록에서 오늘날 베트남에 속한 고대 안남(Annam) 지방 후에에 깐틴 통치하에서 순교한 성 엠마누엘 응우옌 반 찌에우 신부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11월 24일 목록에서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로, 이날 베트남 여러 지역에서 순교한 117명의 순교자를 함께 기념하는데, 이들 중에는 8명의 주교와 많은 사제와 수많은 남녀노소 평신도가 포함되었으며, 그들 모두 십자가를 모독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인하기보다는 추방 · 투옥 · 고문 · 극심한 처벌을 선택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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