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는 1883년 12월 5일 과달라하라(Guadalajara)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코쿨라(Cocula)에서 태어났다. 그는 과달라하라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911년 12월에 사제품을 받은 후 과달라하라의 몇몇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박해가 계속될 때 그는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San Juan de los Lagos) 교구에 속한 할리스코의 토토틀란(Tototlan)에서 은밀히 사목활동을 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그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자주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또한 교리교육뿐 아니라 과학과 상업,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양성하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당시는 사제로서 사는 것이 매우 위험한 박해 시기였기 때문에 토토틀란을 떠나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그는 “나는 여기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기다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1927년 성주간이 시작될 때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비스카라(Francisco Vizcarra) 신부와 그의 동료 신부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 신부 외에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군인들은 모든 분풀이를 그에게 쏟아부었다. 그를 성당 기둥에 단단히 묶고 3일 동안 음식과 물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제들이 숨은 곳을 말하라며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군인들은 성체를 축성한다는 이유로 그의 두 손을 불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참아냈다. 1927년 4월 13일, 성주간 수요일에 그는 마을 외곽의 공동묘지로 끌려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죽기 전에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리스도 왕 만세!”를 외치며 하늘나라로 갔다.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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