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권득인 베드로(Petrus)는 서울 문안에서 태어난 신자 집안의 후예이다. 그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잃었지만, 열심하던 어머니의 표양에 따라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소규모의 장사를 하여 근근이 끼니를 이어 나갔으나 그의 친절과 신심만은 대단히 높았다. 이윽고 그 후 결혼한 그는 사직골에 살면서 첫 닭 울 녘에 일어나서 등잔불을 켜 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후 그는 너리골로 이사하여 십자가와 성패를 만들어 팔아 전교에 힘쓰는 한편 이를 생계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1839년 1월 16일 저녁, 그는 집을 찾아온 처남과 함께 이야기하던 중에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갇혔는데, 부인과 처남은 배교하여 석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권 베드로는 백절불굴의 용기를 드러냈으며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천주교를 믿느냐?” 하는 포장의 질문에 “천주는 천사와 사람과 만물의 임금이시오, 사람은 이러니 천주님께 감사할 생각을 두지 않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습니까?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다 천주를 공경하고 섬길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포장은 성이 나서 무섭게 매질하라고 명령하고, “네 동교인들을 대라”고 소리를 질렀다. “천주교에서는 남을 죽이거나 해하는 것을 엄금하니 어찌 감히 내 말로써 사람들에게 죽을 위험을 당하게 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포장은 그를 강제로라도 배교시키기 위하여 못된 죄수들에게 내맡겨 고문하게 하였다. 이 악한 죄수들은 베드로를 어찌나 몹시 매질하였던지 두 번이나 죽은 줄 알고 내버려 두기까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1839년 5월 24일 금요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니, 이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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