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풍요의 땅이라고 부르는 리마뉴(Limagne)에는 투레(Thuret)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풍의 멋진 성당이 있다. 성 베닐두스(또는 베닐도)는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피에르 로망송(Pierre Romancon)이라 불렸다. 12년 후 그는 같은 성당에서 첫 영성체를 했으며, 영적인 기질도 뛰어났지만 지적인 면도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는 그 후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이 세운 ‘그리스도교 학교 수도회’에 입회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2년 동안 인내와 기도로써 더 준비하여 마침내 입회 허락을 받았다. 그는 이 수도회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또 학교들을 세웠다. 36세 때 그는 프랑스 남부의 소그스(Saugues)에 학교와 수도원을 세운 후 그곳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오로지 사도직을 위하여 산다. 만일 내가 잘못을 행하면 아이들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이 말은 곧 그의 교육철학이자 삶의 지표였던 것이다. 그를 평한 어느 제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베닐도는 천사처럼 선하고 성인처럼 사신 분이다. 훌륭한 교사였다. 엄격했지만 항상 따뜻한 분이었다. 격려와 사랑을 주셨지만 고된 일은 스스로 하도록 시켰다." 그는 1948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7년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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