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Petrus)는 프랑스 비엔(Vienne) 교외의 생모리스(Saint-Maurice) 태생으로 스무 살 경에 그의 두 형제와 아버지와 함께 본느보(Bonnevaux)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1132년에 그는 제네바(Geneva)와 사부아(Savoie) 사이 타랑테즈 산맥에 있는 타미(Tamie) 수도원의 첫 번째 원장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그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1142년에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타랑테즈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시토회의 규칙을 교구 개혁에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주요 사업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의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도움을 베푸는 일이었다. 그는 또한 수확 전 춘궁기에 가난한 농민들에게 빵과 수프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프랑스인들은 이를 '5월의 빵'이라고 불렀고 프랑스 혁명 전까지 지속되었다. 타랑테즈의 주교로서 13년이 지났을 때 그는 몰래 교구를 떠나 스위스에 있는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지내고자 했으나 결국 다시 교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황과 왕의 고문으로서 프랑스에서 교황권을 옹호하는데 힘썼다. 그는 1191년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타랑테즈의 베드로'로 불리는 유명한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다른 한 명은 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5세(Innocentius V, 6월 22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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