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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트루스 놀라스코(Petrus Nolasco, 또는 베드로 놀라스코)는 1182년경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의 마생트푸엘(Mas-Saintes-Puelles)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늘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던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10대의 어느 때에 부모와 함께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이주하였다. 당시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맹위를 떨치던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피해 떠난 것이었고,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15살에 알비파에 맞서는 십자군에 합류한 후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라곤(Aragon)의 왕 제임스 1세(James I)의 궁정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10대 시절에 이베리아반도의 무어인들과 싸우는 군대에 참가했다고도 한다. 불분명한 전승들이 섞이면서 그의 출생지 자체를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로 보는 전승도 생겨났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10대 시절에 바르셀로나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로부터 무역에 대한 것을 배우고 상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15살 무렵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상인으로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종교 생활에서도 큰 진보를 이루었다. 그는 상인으로서 이슬람교 국가와 그리스도교 국가 사이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그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던 중 당시 수백 년에 걸쳐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1203년경 그는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뜻을 모아 그리스도인 포로들을 위한 구호품을 모아 전달하였다. 그는 15년 가까이 동료들과 함께 십자가의 피로 세상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구호품과 대속금을 모아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려 간 그리스도인들을 구하는데 헌신하였다. 1212년 무어인들은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총공격으로 톨로사(Tolosa)에서 패배해 에스파냐 남쪽 그라나다(Granada)로 밀려난 상태였지만, 노예무역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그리스도인 노예 석방을 위해 대속금을 내고 많은 노예에게 자유를 선물했지만, 해방할 노예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구호금이나 그의 재산마저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러던 중 1218년 8월 1일과 2일 사이 밤중에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성모님께서는 그에게 무슬림에게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구출하는 수도원을 설립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성모님의 분부대로 그리스도인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설립을 결정하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아라곤의 제임스 1세 왕과 상의하고 그의 지지와 후원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왕의 초청으로 그 당시 아라곤에 와 있던 페냐포르트(Penafort)의 성 라이문도(Raymundus, 1월 7일)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노예 해방을 위한 속량의 성모회’(Ordo Beatae Mariae de Mercede redemptionis captivorum, OdeM), 흔히 메르체다리오회(Mercedarian Order)라고 부르는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1235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가 설립한 수도회의 회원들은 청빈 · 정결 · 순명의 세 가지 수도 서원 외에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석방을 위해서는 자신을 인질로 바칠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 네 번째 서원도 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 역시 노예 석방을 위해 헌신하던 중 북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대신해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무어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돛대도 키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 바다로 보냈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도회 설립 후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 포로를 구출하며 헌신한 그는 1249년에 수도회 총장직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여생을 기도와 보속으로 보내다가 1256년 또는 1258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에 바르셀로나에서 선종했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바르셀로나 왕립 문서 보관소의 기록을 근거로 1258년 5월 6일을 선종한 날로 보고 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1628년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655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로마 순교록”과 전례력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며 1월 31일을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다.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1월 31일에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사제를 기념하게 되면서 그의 기념일은 1월 28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그 후의 연구 결과를 반영해 오늘날에는 선종한 날로 알려진 5월 6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5일 목록에서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에서 증거자이자 메르체다리오회의 설립자인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는데, 그는 덕행과 기적으로 유명했고 교황 알렉산데르 7세에 의해 1월 31일에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6일로 그의 축일을 옮겨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에 성 베드로 놀라스코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와 아라곤의 국왕 제임스 1세와 함께 노예 해방을 위한 속량의 성모회를 설립했으며, 이교도들의 지배하에 평화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노예의 속박에서 해방하기 위해 부지런히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많은 기록에서 그가 사제품을 받지 않은 평신도 수도자이자 설립자로 설명하고 있으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그를 사제로 표기하였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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