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이 율리아나(金連伊, Juliana)는 양인 출신의 부인으로서, 한양에 살 때에 한신애 아가타(韓新愛, Agatha)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리고 1795년 이후에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姜完淑, Columba)의 집에서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Jacobus)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김 율리아나는 이때부터 자주 교리 강습이나 미사에 참석하면서 점차 신심이 깊어 갔다. 또 ‘천주교의 매파’(媒婆 : 중매인 노파)라고 불릴 정도로 교리를 전하는 데 열중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이름은 교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복음 전파에 노력하는 동안 김 율리아나는 ‘폐궁’이라고 불리던 양제궁을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그 집에는 왕실의 친족인 송 마리아와 그녀의 며느리 신 마리아, 궁녀 강경복 수산나(姜景福, Susanna) 등이 거처하고 있었다. 김 율리아나는 이들과 사귀면서 자주 그들을 안내하여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시켰으며, 이러한 일로 한때는 그녀의 딸이 양제궁에서 나인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800년 12월 박해가 시작되자, 김 율리아나는 여회장 강 골롬바의 부탁을 받고 김계완 시몬(金啓完, Simon)을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다. 이어 다음 해 초, 공식적으로 박해령이 내려진 뒤에는 황사영 알렉시오가 그녀의 집으로 피신해 왔고, 이로 말미암아 그녀 자신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실제로 김 율리아나는 얼마 안 있어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내 포도청으로 압송된 그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형벌과 문초를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조금도 약한 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엄한 형벌 가운데서도 “만 번 죽더라도 천주교를 믿어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그런 다음, 김연이 율리아나는 강완숙 골룸바, 강경복 수산나, 한신애 아가타 등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형조에서 그녀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김연이는 천주교를 중매하는 노파로, 각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양민을 유혹하여 그릇된 길로 이끌었으니,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강완숙과 체결하여 주문모에게 세례를 받고, 양제궁과 통하여 서로 오가면서 교리를 전하였으며, 달아나는 무리들을 집 안에 숨겨줌으로써 천주교의 우두머리인 황사영이 도망하도록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죄는 만 번 죽어도 합당하다.” 김연이 율리아나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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