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이국승 바오로(李國昇, Paulus)는 충청도 음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충주로 이주해 살았다. 호는 ‘미암’(靡庵)이다. 장성한 뒤 충주 지역에 전해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된 이 바오로는, 이 새로운 종교를 철저히 배우려고 경기도 양근 땅에서 살던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교리를 배우고는 은총으로 마음이 움직여 즉시 교회의 본분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이 바오로의 스승은, 그를 불러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순교에 이를 만큼 신앙이 굳건하지는 않았다. 1795년의 을묘박해가 일어난 뒤, 충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형벌을 받던 도중에 석방된 사실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온 이 바오로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죄를 보속하려고 전심전력을 다하였다. 또 부모가 혼인을 시키려고 하자, 가족 때문에 본분을 다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혼인을 거부하고 동정을 지키며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럼에도 부모들의 재촉은 계속되었고, 그는 이를 피하고자 한양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이 바오로는 훈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전하였다. 또 최창현 요한(崔昌顯, Joannes), 정약종 아우구스티노(丁若鍾, Augustinus) 등 교회의 지도층 신자들과 함께 교리를 익혔으며,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고,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Jacobus) 신부를 만나 성사도 받았다. 이제 이 바오로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포졸들은 체포된 신자들에게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이때부터 포졸들은 이 바오로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으며, 곧 그를 체포하여 포도청으로 압송하였다. 포도청으로 압송되면서도 이 바오로는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바오로가 옥에 이르렀을 때, 마침 황해도 출신의 고광성이 배교하고 옥문을 나서려 하고 있었다. 이에 이국승 바오로는 그에게 “배교한 것은 제가 아니고, 마귀가 저를 속여 저의 입을 빌려 말한 것입니다.”라고 관장 앞에 나가 말하도록 권면하였으며, 고광성은 여기에서 힘을 얻어 순교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바오로 또한 형벌과 문초를 받는 동안 여러 차례 고광성과 같은 일을 겪어야만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 바오로의 진심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가 여러 차례 유감을 느끼도록 한 뒤에야 신앙을 굳게 증언하고, 사형 선고를 이끌어 내는 데 필요한 힘을 내려 주셨다. 이때 그는 형조에서 다음과 같이 최후 진술을 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이미 고질병같이 되었으니, 비록 형벌을 받아 죽는다고 할지라도 신앙을 지키는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일찍이 충주에서 체포되었을 때에는 혹독한 형벌을 이기지 못해서 ‘마음을 바꾸겠다.’는 뜻으로 말하고 석방되었지만, 이는 저의 본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국승 바오로는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 다음, 며칠 후에 충청도 공주로 이송되어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순교 후, 그의 조카들이 시신을 거두어 공주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이국승 바오로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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