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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언 바오로(5.29)

이경언 바오로(5.29)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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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이경언 바오로 (李景彦 Paul)
축일 5월 29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양반,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92-1827년
같은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이 바오로, 이바오로, 파울로, 파울루스,
성인 기본정보

   ‘종회’ 혹은 ‘경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이경언 바오로(李景彦, Paulus)는, 1792년 한양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충청도 연기 군수를 지냈으며, 부친인 이윤하 마태오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로서 외조부였던 이익의 학문을 잇고 있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교회 창설에 기여한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누이였다. 1802년 한양에서 순교한 이경도 가롤로(李景陶, Carolus)는 그의 형이고, 1802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李順伊, Lutgardis)는 그의 누나이다.

   이 바오로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천주교 교리를 실천하였다. 비록 몸은 허약하였지만 성격은 유순하면서도 강인하였고, 정신적으로도 훌륭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신유박해 이듬해인 1802년에 형과 누나가 순교한 뒤, 그의 집안은 아주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 바오로는 어머니와 형수와 함께 살면서 가난을 신앙으로 이겨 냈다. 또 22세 되던 해에 한 중인 집안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아내의 성질이 고약하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모범적인 인내로 이를 극복하였다.

   평소에 이 바오로는 속병이 있어 자주 고통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불평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화평한 얼굴로 생활하였으며, 자주 성경을 읽거나 깊은 묵상에 빠지곤 하였다. 그는 언제나 냉담자를 권면하고, 교우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의 곤경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였다. 1819년에 순교한 조숙 베드로(趙淑, Petrus)가 이러한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 바오로는 이후 명도회(明道會)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학식과 재주를 이용하여 교회 서적을 베끼거나 상본을 모사하였고, 이를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북경을 오가는 밀사들에게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주느라 힘썼으며, 회장들을 양성하는 일에도 헌신하였다.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Paulus) 성인이 북경을 오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것도 바로 그였다.

   이 바오로는 언제나 마음속에 순교의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면서 자주 묵상하였고, 다른 교우들에게도 천주를 위해 죽음을 당할 준비를 하도록 권고하곤 하였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난 뒤, 이 바오로는 자신이 나누어 준 서적과 상본 때문에 전주 관아에 고발되었다. 이내 전주에서는 그를 체포하려고 한양에 포졸들을 파견하였다. 얼마 안 되어 체포된 그는 먼저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신앙을 고백한 다음, 조정의 명령에 따라 전주로 이송되었는데, 이후의 사실은 그 자신이 전주 옥중에서 기록한 수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바오로는 여러 차례의 혹독한 형벌 때문에 약해지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채찍질해 가면서 순교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에게는 오직 형과 누나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전주 옥중에서 어머니와 가족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그리고 명도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세 통의 서한을 작성해 보냈는데, 여기에도 이러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상처의 괴로움으로 말하자면, 나의 너무나 연약한 육체만으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천주의 은총과 성모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어찌 한시인들 이를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 천주께서 지금까지 내게 무수한 은혜를 내려 주신 것으로 볼 때, 분명히 나를 저버리려고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먼저 천국에 올라가게 되면, 누구든지 이 큰 집에 올라오실 때에 내가 마중 나가 우리의 보편된 아버지께로 함께 가서 그분을 찬미할 것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신앙을 증언하느라 노력하였지만, 선천적으로 약했던 이경언 바오로의 육체는 더 이상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였다. 상처는 계속 깊어졌으며, 그는 신음 속에서 마지막 며칠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1827년 6월 27일(음력 윤 5월 4일) 전주 옥중에서 하느님께 영혼을 바쳤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이경언 바오로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참고자료

  • 유은희 지음, 이슬은 빛이 되어(순교자의 삶과 신앙) - ‘전신이 입이라도 다 찬미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종 이경언 바오로’, 서울(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9년, 147-153쪽.
  •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 '이경언 바오로',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187-189쪽.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자료집 제4집 - '이경언', 서울, 2007년, 406-487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이경언 李景彦',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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