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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영 프로타시오(5.29)

홍재영 프로타시오(5.29)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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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홍재영 프로타시오 (洪梓榮 Protase)
축일 5월 29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양반,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80-1840년
같은이름 쁘로따시오, 쁘로따시우스, 프로타시우스, 홍 프로타시오, 홍프로타시오
성인 기본정보

   홍재영 프로타시오(洪梓榮, Protasius)는 충청도 예산의 유명한 양반 집안 출신으로, 충주에서 태어나 한양에서 성장하였다. 1801년에 순교한 홍낙민 루카(洪樂敏, Lucas)는 그의 부친이요, 1866년에 순교한 홍봉주 토마스는 그의 아들이다.

   홍 프로타시오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 교리를 배웠다. 또 장성한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 활동에 참여하거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교리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1801년의 신유박해로 체포된 뒤에는 부친과 같이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배교한 뒤 전라도 광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홍 프로타시오는 한동안 냉담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은총의 힘으로 다시 신앙을 찾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이전의 잘못을 보속하려는 생각에서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해 나갔다.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기도와 묵상 생활에도 열중하였다. 어떤 때는 너무나 오랫동안 꿇어앉아 기도를 한 탓에 걷기 어려울 정도가 된 적도 있었다. 또 일주일에 금식재를 세 차례나 지켰고, 어려운 교우들을 위해 열심히 자선을 베풀었다.

   1832년 조정에서 유배자들에게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자, 광주 관장은 홍 프로타시오를 불러다 “이제 마음을 고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설득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유혹을 물리쳤으며, 이후에도 그대로 광주에서 살았다.

   이로부터 7년 뒤인 1839년에 이르러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홍 프로타시오의 마음에는 순교자들의 뒤를 따름으로써, 이전에 잃은 기회를 다시 찾겠다는 욕망이 가득하게 되었다. 또 그는 피신해 다니는 여러 교우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어 주고, 그들을 한 가족처럼 대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전주에서 파견된 포졸들이 그의 집을 찾아와, 함께 있던 천주교 신자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광주 관장은, 홍 프로타시오를 한 번 문초하고 나서, 다른 교우들과 함께 전주로 이송하라고 명하였다. 그때 읍내의 주민들 3-4백 명이 나와 “어떻게 의로운 사람을 이렇게 벌한단 말인가.” 하면서, 어떤 이들은 그를 붙잡고, 어떤 이들은 괴로움으로 울부짖기까지 하였다.

   전주에 도착한 날부터 홍 프로타시오는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밀고하는 것도, 주님을 배반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였다. 감사 앞으로 끌려 나가 형벌을 당하면서도 그의 신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전주 감사는 홍 프로타시오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옥에 가두도록 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사형 판결이 내려오자, 감사는 다시 한 번 홍 프로타시오를 불러내 유혹해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홍재영은 근본이 흉악한 종자로서 대대로 천주교를 신봉해 왔으며, 선교사를 청해 올 때에 힘을 기울였고, 천주교 서적을 베낀 것이 110여 권에 이르며, 수십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숨겨 주었다. 이처럼 죄악이 으뜸이 되므로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따라 홍재영 프로타시오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40년 1월 4일(음력 1839년 11월 30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였다.

   홍재영 프로타시오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참고자료

  • 유은희 지음, 이슬은 빛이 되어(순교자의 삶과 신앙) - ‘유배지에서 빛의 삶을 살은 하느님의 종 홍재영 프로타시오’, 서울(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9년, 223-234쪽.
  •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 '홍재영 프로타시오',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226-228쪽.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자료집 제5집 - '홍재영', 서울, 2008년, 266-293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홍재영 洪梓榮',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750-9751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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