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나(李, Anna)는 인천 재궁골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자 충청도 충주 서촌에 살던 교우 송 베드로(宋, Petrus)의 아들과 혼인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시조부 송 베네딕토송(宋, Benedictus)와 시부모를 모시면서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중하였다. 송씨(宋氏) 집안이 좀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진천 배티 교우촌으로 이주하게 되자, 이 안나도 남편을 따라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교우촌 신자들과 어울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그녀는 1867년 봄에 한양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으며, 진천 관아와 경기도의 죽산 관아를 거쳐 한양으로 이송되었다. 이 안나는 한양으로 압송된 다음에도 신앙을 굳게 지키고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67년으로 그녀의 나이는 26세였다. 이 안나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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