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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 양주(양주 관아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병인박해 때 순교자를 배출한 경기 북부의 치명지
지번주소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233(양주 향교 앞) 
도로주소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423번길 35-12
전화번호 (031)841-1866
홈페이지 http://www.facebook.com/yjmartyrsshrine
문화정보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양주 관아지)
1997년 복원된 동헌 너머로 2017년에 복원된 관아 부속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양주별산대 놀이마당과 유양 초등학교 사이 야산 아래 양주 관아지(楊州官衙址)가 있다. 양주 관아는 1506년(중종 1년)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시둔면(현 의정부시 의정부 1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楊州牧)을 관할한 행정관청이었다. 1871년(고종 8년)에 부천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를 합편한 6책의 필사본인 “경기읍지(京畿邑誌)” 등에 양주 관아에 동헌(東軒), 객사(客舍), 사창(司倉), 군사시설 등 약 31개의 관아 시설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양주시는 1997년 양주목사의 집무처인 동헌(매학당)을 복원하고, 1999년 4월 23일 양주 관아지를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등록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진행해 관아의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 다수의 건물지와 담장지, 각종 유물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해 동헌부 부속건물 및 내아에 대한 복원작업에 들어가 2017년 동헌부 부속건물인 동행각, 서행각, 내삼문, 사령청, 외삼문, 중렴성문, 외렴성문과 양주목사의 관사였던 내아, 내아삼문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고, 이듬해까지 주변 환경 정비를 시행했다.

박해시대 경기도 북부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으나 박해가 진정되고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재건 속도가 빨라져 1830년대 초 고양(高陽) 지역에선 70-90명 규모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2017년 복원된 양주 관아지의 외삼문과 내삼문 및 좌우행각 사이로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서울 인근이라는 지리적 배경 때문에 경기의 동부나 남부에 비해 교세적인 측면은 약하지만 새로운 교우촌 형성과 기존 교우촌 재건을 통해 신앙을 이어갔고 초기 교회 때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신앙 전통은 초기 포천과 마재에서 19세기 전반ㆍ중반기엔 고양과 송도 지역으로, 장단, 파주, 포천, 양주 등으로 확산되었다.
 
양주 관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용인과 이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순교지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홍성원 아우구스티노, 김윤오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 박 서방 등 5명이 순교하였다고 “치명일기(致命日記)”는 전하고 있다.
 
김윤오와 그의 아내 권 마르타는 용인 굴암에서 거주하다가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었고, 김 마리아는 용인 한덕골에서 거주하다가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홍성원은 포천에서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치명하였고, 양주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 서방은 홍주에서 치명한 박사행의 부친으로 양주 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홍성원과 박 서방은 양주와 관련이 있으나 용인에서 체포된 이들이 양주 관아까지 와서 순교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양주 순교성지에 2018년 설치된 십자가의 길 제4처 모습.
병인박해의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도 1883년 이전에 경기 북부 지역에는 이미 양주 고령(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가라비(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연천 밤골에 공소가 있었으며, 1886년 한불조약 체결 이후 약현 본당과 송도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지역 신자 수가 크게 늘었다.
 
1909년 행주 본당과 1927년 신암리 본당 설립 이후 경기 북부 지역의 공소 수는 이전에 비해 감소했지만 기존에 공소가 없었던 지역에까지 신앙이 전파되어 공소가 설정되었다. 1924년 448명에 불과하던 이 지역 신자 수가 1937년에는 1,700여 명으로 증가한 것이 이를 잘 방증해 준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2008년 ‘경기 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 심포지엄을 통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양주 관아 일대의 치명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고, 이를 근거로 양주 향교 앞의 순교터 3,766㎡를 매입하였다. 이어서 2016년 5월 28일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양주 관아터를 의정부교구 관내 첫 순교성지로 선포하며 현양미사를 봉헌하였다. 2017년 9월에는 전담 사제를 배정하여 순교터 천막성당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양주 순교성지의 성역화와 순교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종수정 2018년 3월 28일]

의정부교구는 양주 관아 일대의 치명지로 추정되는 부지를 매입하여 2016년 5월 양주 순교성지로 선포하고 성역화를 추진하고 있다.2017년 복원작업을 마친 양주 관아지 전경. 왼쪽에 양주목사의 집무처인 동헌과 부속건물이, 오른쪽에 관사인 내아가 자리하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바일용 요약 설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박해시대 경기도 북부 지역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으나 박해가 진정되고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재건 속도가 빨라져 1830년대 초 고양(高陽) 지역에선 70-90명 규모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양주 관아는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졌습니다. “치명일기”에 의하면 바로 이곳에서 홍성원 아우구스티노, 김윤오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 박 서방 등 5명이 순교했습니다. 양주 관아는 1506년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시둔면(현 의정부시 의정부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楊州牧)을 관할한 행정관청이었습니다. 양주시는 1997년 양주목사의 집무처인 동헌(매학당)의 복원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조사를 반영하여 2017년 동헌부의 부속건물과 내아를 복원했습니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2008년 '경기 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 심포지엄을 통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양주 관아 일대의 치명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고, 이를 근거로 양주 향교 앞의 순교터를 매입하여, 2016년 5월 양주 순교터를 의정부교구 내 첫 순교성지로 선포하며 현양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의정부교구는 2017년부터 전담사제를 배정해 매일미사를 봉헌하며 양주 순교성지의 성역화와 순교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사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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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11:00  양주 순교성지 천막성당에서 봉헌합니다.
평일미사 11:00  찬양미사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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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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