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파카난은 6세기 중엽 아일랜드 남부 툴라흐테안(Tulachteann)에서 태어나 킬리디(Killeedy)의 성녀 이타(Ita, 1월 15일) 문하에서 공부하고, 먼스터(Munster) 지방 코크(Cork) 동부 욜(Youghal) 마을 근처 블랙워터강(Blackwater R.)의 어느 섬에 몰라나(Molana)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만(灣)을 끼고 있는 코크의 로스카베리(Rosscarbery)에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원 학교는 신학과 문학 교육으로 유명해졌고,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수도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어 ‘순례자의 로스’(Ross of the Pilgrims)라는 뜻의 ‘로스-아일리시르’(Ross-Ailithir)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성 파카난은 주교로 임명되어 로스 교구의 초대 주교가 되었으며 그 교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현명하고 정의로우며 훌륭한 설교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6세기 말에 40대 중반의 나이로 선종해 로스에 있는 대성당에 묻혔고, 그에 대한 공경은 1902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4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아일랜드 로스의 주교이자 대수도원장인 성 파카난이 로스에 세운 수도원이 신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파카난은 성 파흐트나(Fachtna) 또는 라틴어로 파쿤두스(Facundus, 또는 파쿤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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