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람인 성 파프누티우스(또는 파프누시오)는 사막의 은수자인 성 안토니우스(Antonius, 1월 17일)의 문하생으로 몇 해 동안 지내던 중에 상(上) 테베(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ia)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당한 후 광산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25년의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공의회의 일부 교부들이 기혼자인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에게 아내와 별거하는 의무를 부과시키고자 할 때, 성 파프누티우스는 이러한 제안에 반대하고 단지 성직자는 서품 후에 결혼할 수 없다는 점만 역설하였다. 또한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과 대항하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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