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10일 목록에서 성 안티오키아(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의 성 데메트리오(Demetrius) 주교와 성 아니아노(Anianus) 부제, 그리고 성 에우스토시오(Eustosius)와 다른 20명이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동방교회의 증언에 따르면 성 데메트리아누스(Demetrianus, 또는 데메트리아노)는 253년에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출되어 그의 후임으로 261년에 사모사타(Samosata)의 바오로(Paulus)가 선출되기 전에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데메트리아노라는 이름을 둘로 나누어 성 데메트리오 주교와 성 아니아노 부제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 에우스토시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함께 순교한 20명도 성 데메트리아노 주교와는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성 데메트리아노가 샤푸르 1세(Shapur I, 241~272년 재위)에 의해 추방되어 페르시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였다. 7세기 기록된 시리아 연대기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 왕은 256년에 로마제국의 도시인 안티오키아를 정복한 후 주민 상당수를 전쟁 포로로 오늘날 이란 서부 후제스탄주(Khuzestan州)의 수사(Susa)와 슈슈타르(Shushtar) 사이에 군데샤푸르(Gundeshapur)라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강제로 이주시켰다. 안티오키아 주민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는데, 성 데메트리아노 주교도 이때 함께 추방되어 군데샤푸르에서 신자들을 돌보며 고통을 겪다가 260년경 안티오키아를 향해 마지막 축복을 보내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안티오키아에 제때 알려질 수 없었기 때문에 261년까지 안티오키아 교회는 그의 후계자를 선출하지 못했다. 성 데메트리아노는 유배 중에 고통 속에서 끝까지 주교 직무를 수행하다가 숨을 거두었기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성 마루타스(Maruthas, 2월 16일) 주교에 의해 그의 주교좌가 있는 마르티르폴리스(Martyropolis,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의 실반[Silvan])에 새로 지은 대성당으로 옮겨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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