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목록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콜레타(3.6)

콜레타(3.6)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콜레타 (Colette)
축일 3월 6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코르비(Corbie)
활동연도 1381-1447년
같은이름 꼴레따, 꼴레뜨, 콜레따, 콜레트
성인 기본정보

   성녀 콜레타(Coleta)는 1381년 1월 13일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코르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결혼 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들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오(Nicolaus, 12월 6일)에게 기도해 딸을 얻자 니콜레트(Nicolett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보통 콜레트(Colette)로 불렸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 고장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목공 일을 하던 로베르 부알레(Robert Boilet)였고, 어머니는 카트린 모옌(Catherine Moyen)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도와 고행을 좋아했던 성녀 콜레타는 17세 때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일하던 수도원 원장의 도움으로 잠시 수녀원에 머물다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뒤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어 1402년 9월 17일부터 베네딕토회 수도원 근처에 암자를 짓고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성녀 콜레타는 21살부터 코르비의 은둔소에서 홀로 살았는데, 그곳에서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환시를 보았다. 이때 성 프란치스코는 그녀에게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클라라 수도회)가 엄격하던 그들 본래의 회칙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그녀의 성덕과 영적 지혜가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영적 조언을 받고자 몰려들고 있었다. 그녀는 클라라 수도회가 초창기 정신에 따라 살도록 개혁하라는 환시에 응답하고자 자신의 은둔소를 떠났다. 성녀 콜레타는 자신의 고해사제인 앙리 드 바움(Henry de Baume) 신부의 권고에 따라 교황청 책임자인 베드로 드 루나(Petrus de Luna) 신부를 면담하기 위해 1406년 8월에 니스(Nice)로 갔다. 루나 신부는 먼 길을 걸어서 아비뇽까지 온 성녀 콜레타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는 1406년 8월 29일 교황 칙서를 통해 그녀가 클라라 수도회에 입회하는 것을 허락하고, 기존 수도원의 개혁과 새로운 수도원 설립의 사명을 정식으로 위임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피카르디와 사부아(Savoie) 지방의 클라라 수도회를 개혁하려 노력했지만, 그 지방 수녀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즈음 클라라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 정신에서 벗어나 수도 생활이 매우 해이해져 있었다. 1407년 성녀 콜레타는 기증받은 브장송(Besancon)의 부지에 새 수도원을 설립하고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엄격한 회칙을 준수하며 절대적인 가난과 단식을 실천했다. 1410년부터 앙리 드 바움 신부의 지지를 얻어서 개혁 사업은 점차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 지역 내에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수도원을 17개나 세웠고, 르 퓌 앙 블레(Le Puy en Velay) 수도원을 비롯한 기존의 몇몇 수도원도 개혁하였다.

   성녀 콜레타는 임부와 산부 그리고 아픈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데, 이는 그녀가 행한 기적과 관련이 있다. 그녀가 교황을 만나기 위해 니스로 여행하던 중 한 친구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셋째 아이를 갖고 있었고 출산의 어려움으로 죽을 위험에 놓여 있었다. 성녀 콜레타는 즉시 그 지역 성당에 가서 기도했고, 어머니는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페트로닐라(Petronilla)라는 이름을 얻었고, 후에 성녀 콜레타가 설립한 수녀원에 입회해서 그녀의 비서 겸 전기 작가가 되었다. 또 한 번은 교황으로부터 클라라 수도회를 개혁할 사명을 위임받고 브장송에 수도원을 설립했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웠었다. 그 무렵 그 지역에 살던 한 여인이 사산아를 낳았는데, 아이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아버지는 성당에 가서 세례를 청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 아이가 이미 죽었다며 세례를 거부했다. 그래서 수녀원으로 달려갔을 때, 성녀 콜레타는 교황으로부터 받은 수도복으로 그 아이를 감싸주고 성당 사제에게 가라고 했는데, 성당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의식이 돌아와 울고 있었다. 사제는 즉시 그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성녀 콜레타는 무슨 일을 수행하도록 훈련받거나 준비한 일은 없었지만, 믿음의 힘과 성덕 그리고 아무도 거스르지 못하는 결정에 따라 일을 올바르게 성취해 나갔다. 그녀는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고 고난에 대한 환시를 보았으며, 벨기에 겐트(Gent)의 수도원에서 자신이 죽으리라는 예언대로 1447년 3월 6일 그곳에서 평화로이 선종했다. 성녀 콜레타의 개혁 클라라 수도회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개혁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성녀 콜레타는 사망 직후부터 시성 조사가 시작되어 1740년 1월 23일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콜레타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58-361쪽.
  • 소년편집부, 성녀 콜레타(어린이 성인전 3), 서울(가톨릭출판사), 2000년.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 '콜레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5년, 8507-8509쪽.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게시판
번호 성인명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추천수
3 [콜레타(3.6)] 성인 이름에 담긴 뜻: 콜레타(Colette) 주호식 2023/06/06 170 0
2 [콜레타(3.6)] 성녀 콜레트 주호식 2012/03/10 554 0
1 [콜레타(3.6)] 성녀 콜레트: 수도회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 주호식 2012/03/10 699 0
검색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