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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카 당부아즈(11.4)

프란치스카 당부아즈(11.4)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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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프란치스카 당부아즈 (Frances d’Amboise)
축일 11월 4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과부,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427-1485년
같은이름 당보와즈, 방지가, 앙부아즈, 프란체스까, 프란체스카, 프란치스까, 프랑수아즈, 프랜시스
성인 기본정보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Francisca/Francesca d’Amboise, 또는 프란체스카 당부아즈)는 1427년 프랑스 서부 투아르(Thouars) 성(城)에서 탈몽(Talmont)의 왕자이자 투아르의 자작으로 부유한 귀족인 루이 당부아즈(Louis d’Amboise)와 루이즈 마리 드 리외(Louise-Marie de Rieux)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백년 전쟁으로 인한 영주의 폭력을 피하려고 딸과 함께 반(Vannes)에 있는, 나중에 낭트(Nantes)로 옮긴 브르타뉴(Bretagne) 궁정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는 세 살 때 정치적인 이유로 브르타뉴 공작의 둘째 아들인 피에르(Pierre)와 약혼을 했고, 그녀가 15살이 된 1442년에 결혼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질투심이 강하고 음침하며 때때로 난폭하기까지 했다.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는 그런 남편에게 불평하지 않고 큰 인내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로 인해 남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1450년 남편이 형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공작의 자리를 승계하자 그녀는 쾌활하고 인내심 강한 공작부인으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서부 낭트에 클라라회를 위한 수도원을 세웠고, 성 빈첸시오 페레르(Vincentius Ferrer, 4월 5일)의 시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 모금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1457년 남편이 병으로 죽은 뒤에 그녀는 재혼을 원하는 가족들의 요구와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던 프랑스 왕 루이 11세(Louis XI)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지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 1463년에 카르멜회 총장 신부인 복자 요한 소레트(Joannes Soreth, 7월 25일)와 함께 브르타뉴 지방 반에 카르멜회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 수녀원에서 생활하던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는 1468년 수도 서원을 하고 수녀로서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서원 후 4년 만에 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온화하고 단호할 뿐 아니라 겸손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 후 낭트의 카르멜회 수녀원으로 옮겨 소임을 다한 복녀 프란치스카 당부아즈는 1485년 11월 4일 선종하여 그곳의 노트르담 성당에 묻혔다. 그녀는 선종 후 몇 년 뒤에 교황 인노첸시오 8세(Innocenti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3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4일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며 공작부인으로서 반에 카르멜회 수녀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지냈다고 기록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그녀를 프랑수아즈 당부아즈(Francoise d’Amboise)로 부른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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