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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코 모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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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헨리코 모스 (Henry Morse)
축일 2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95-1645년
같은이름 앙리, 하인리히, 헨리, 헨리꼬, 헨리꾸스, 헨리쿠스
성인 기본정보

   성 헨리쿠스 모스(Henricus Morse, 또는 헨리코 모스)는 1595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 동부 서퍽(Suffolk)의 브룸(Brome)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16세 때 그는 케임브리지(Cambriddge)의 코르푸스 크리스티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런던(London)의 그레이즈인 법학원(Gray’s Inn)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161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형제 윌리엄(William)을 만났다. 그리고 그해 6월 5일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영국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위해 잠시 잉글랜드로 돌아오다가 교회에 대한 영국 여왕의 권위를 묻는 도버(Dover) 항구의 조사원에게 가톨릭 신자다운 답을 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서더크(Southwark)의 감옥에 갇혔다. 그는 그곳에 4년 동안 갇혀있다가 1618년 국왕 제임스 1세(James I)가 감옥에 갇힌 100여 명의 가톨릭 사제들을 프랑스로 추방할 때 함께 풀려났다.

   1618년 8월 두에로 돌아온 성 헨리코 모스는 영국 대학에 입학하려 했으나 정원 초과로 로마의 영국 대학으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영국 왕실 스파이의 감시를 피하려고 헨리 클랙슨(Henry Claxon)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1623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1624년 6월 영국 선교를 위한 여정에 올랐다. 출발 전에 그는 로마에 있는 예수회 총장 신부에게 입회를 청했는데, 총장 신부의 권고대로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에서 입회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병자들을 간호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수련기를 마치고 첫서원을 준비하던 그는 1626년 4월 12일 타인(Tyne) 강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뉴캐슬(Newcastle)의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5월 1일 요크 성(York Castle)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회의 존 로빈슨(John Robinson) 신부를 만났다. 존 로빈슨 신부는 로마에서 그와 함께 공부했던 적이 있었고, 이미 6년 동안 예수회원으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존 로빈슨 신부의 지도로 감옥에서 30일 피정을 마치고 무사히 첫서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3년을 더 감옥에서 지내다가 1630년 3월경 다시 석방되었다.

   그 후 그는 플랑드르(Flandre)에 주둔한 에스파냐 군대에서 복무하는 영국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군종신부로 파견되었다. 1633년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주로 런던 외곽의 빈민 지역에서 활동했다. 1635년 그 일대에 페스트가 번지자 그는 병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한 약을 구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1638년 2월 27일 환자들을 돌보고 돌아오다가 체포되어 뉴게이트 감옥에 갇혔다. 그는 가톨릭 사제로서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진행하던 중 찰스 1세 왕의 부인이며 프랑스의 공주이자 가톨릭 신자인 앙리에타 마리(Henriette Maria) 왕비의 배려로 6월 17일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가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을 정성을 다해 돌본 점이 고려된 결정이었다. 석방된 후 그는 잠시 런던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641년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이전처럼 군종신부로 활동했다.

   1643년에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온 그는 런던에서는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주로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 활동했다. 1년 반 정도 지나고 어느 날 밤에 병자성사를 주고 돌아오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더럼(Durham) 감옥에 갇혔다가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1645년 1월 런던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예전에 체포되었던 경력 등이 고려되어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2월 1일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헨리코 모스 신부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2월 1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일 목록에서 예수회 신부인 성 헨리코 모스가 여러 번 체포되고 유배 생활을 했는데, 찰스 1세 치하에서 가톨릭 사제직을 수행한 이유로 런던의 타이번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314-316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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