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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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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티아 (Matthias)
축일 2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3회원
활동지역 일본(Japan)
활동연도 +1597년
같은이름 마띠아, 마지아, 마티아스
성인 기본정보

   성 마티아스(또는 마티아)는 일본 태생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당시 일본 교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87년에 선교사 추방령을 내린 적이 있었지만, 1590년 예수회의 순찰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가 인도 부왕(副王)의 사절 자격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방문하고, 1593년 에스파냐 출신의 작은 형제회 신부로 당시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에서 활동하던 성 베드로 밥티스타(Petrus Baptista)가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Felipe II)의 대사 자격으로 일본에 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면서 금교의 제약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596년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금교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미야코(宮古, Miyako) 일대에서 성당과 수도원과 병원을 세우는 등 공공연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일본 지배층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게다가 그해 여름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를 떠나 멕시코로 가던 에스파냐 선박 산 펠리페(San Felipe)호가 태풍에 밀려 일본 해안으로 떠밀려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선원들이 일본 관리들과 대화 중에 에스파냐의 왕권과 정복욕을 자랑하며 일본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 결과 1596년 말부터 게이한(京阪, 교토와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체포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과 함께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 박해로 게이한 지방에서 체포된 이들은 작은 형제회의 신부와 수사 6명, 작은 형제회의 일본인 재속 3회원 15명, 예수회의 수사 3명 등 모두 24명이었다. 박해 중에 군인들이 미야코로 그리스도교 신자를 체포하러 왔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마티아를 찾고 있었다. 그러자 흔히 미야코의 성 마티아(Matthias of Miyako)로 불리는 성 마티아가 자기가 바로 그들이 찾는 마티아라고 하여 다른 마티아 형제를 구하고 대신 체포되었다. 1597년 1월 3일, 미야코 감옥에 갇혔던 성 마티아와 동료들은 모두 광장으로 끌려 나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장인 나가사키(長崎, Nagasaki)까지 혹한의 추위 속에서 걸어가야 했다. 그들이 처형을 위해 나가사키까지 가는 동안 예수회 회원들을 돌보도록 오르간티노(Gnecchi-Soldo Organtino) 신부에 의해 파견된 성 베드로 스케지로(Petrus Sukejiro)와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돌보던 성 프란치스코 키치(Franciscus Kichi)도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길에 동참해 순교자는 모두 26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2월 5일에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浦上, Urakami)라는 교우촌에 도착해 2명의 예수회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성 마티아와 동료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나가사키의 골고타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할 수 있어서 기뻐했던 성 마티아와 25명의 동료는 이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순교한 언덕은 이후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 마티아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627년 9월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2년 6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26위의 일본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가 순교한 2월 5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9년의 전례력 개정과 함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 동정 순교자와의 중복을 피하려고 2월 6일로 날짜를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또한 2월 6일 목록에서 26위의 일본 성인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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