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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예수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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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필립보(예수의) (Philip of Jesus)
축일 2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일본(Japan)
활동연도 1572-1597년
같은이름 비리버, 펠리페,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헤수스
성인 기본정보

   예수의 성 필리푸스(Philippus de Jesus, 또는 예수의 성 필립보)는 1572년 에스파냐에서 멕시코로 이주한 부모에 의해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태어나 펠리페 데 라스 카사스(Felipe de las Casa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다소 부산하고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했고, 젊은 나이에 멕시코의 푸에블로(Pueblo)에서 산타 바르바라(Santa Barbara)의 개혁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수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수도원을 나와 아버지와 함께 해외무역을 위해 에스파냐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로 갔다. 그곳에서 세속의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으나 다시금 수도 생활에 대한 성소를 느꼈고, 결국 1594년 마닐라에 있는 천사의 모후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서원을 하면서 ‘예수의 성 필립보’라는 수도명을 얻은 후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담당했다.

   1596년 그는 가족들의 요구와 나머지 학업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기 위해 멕시코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시 마닐라의 주교좌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사제품을 받기 위해 내려진 결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7월 12일 에스파냐 선박인 산 펠리페(San Felipe)호를 타고 마닐라를 떠났는데, 도중에 태풍을 만나 항로를 벗어난 배가 일본 해안까지 떠밀려가 좌초하고 말았다. 그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는 성 필립보와 선원들을 일단 구금하고 배를 압수하였다. 그리고 배에 실려 있던 대포와 탄약 등 화물을 빼앗기 위해 그들을 일본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에스파냐 왕이 파견한 스파이로 몰았다. 게다가 선원들이 일본 관리들과 대화 중에 에스파냐의 왕권과 정복욕을 자랑하며 일본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어 당시 일본을 다스리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분노를 자아냈다. 예수의 성 필립보는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미야코(宮古, Miyako)에서 공공연하게 선교 활동을 전개하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머물렀는데, 산 펠리페호 문제와 함께 그들의 활발한 활동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작은 형제회 회원들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

   결국 1596년 말부터 게이한(京阪, 교토와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체포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내려지고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예수의 성 필립보도 체포되었다. 이 박해로 게이한 지방에서 체포된 이들은 작은 형제회의 신부와 수사 6명, 작은 형제회의 일본인 재속 3회원 15명, 예수회의 수사 3명 등 모두 24명에 달했다. 1597년 1월 3일, 미야코 감옥에 갇혔던 예수의 성 필립보 수사와 동료들은 모두 광장으로 끌려 나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장인 나가사키(長崎, Nagasaki)까지 혹한의 추위 속에서 걸어가야 했다. 그들이 처형을 위해 나가사키까지 가는 동안 예수회 회원들을 돌보는 일을 맡은 성 베드로 수케지로(Petrus Sukejiro)와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돌보던 성 프란치스코 키치(Franciscus Kichi)도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길에 동참해 순교자는 모두 26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2월 5일에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浦上, Urakami)라는 교우촌에 도착해 2명의 예수회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예수의 성 필립보와 동료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나가사키의 골고타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할 수 있어서 기뻐했던 예수의 성 필립보와 25명의 동료는 이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순교한 언덕은 이후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수의 성 필립보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627년 9월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2년 6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26위의 일본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이로써 예수의 성 필립보는 멕시코 출신으로서 첫 번째 성인이 되었고, 멕시코 시티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가 순교한 2월 5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9년의 전례력 개정과 함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 동정 순교자와의 중복을 피하려고 2월 6일로 날짜를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또한 2월 6일 목록에서 26위의 일본 성인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예수의 성 펠리페(Felipe de Jesus)로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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