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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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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그레고리오 (Gregory)
축일 1월 1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부, 신학자
활동지역 니사(Nyssa)
활동연도 335?-395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성 바실리오(Basilius the Elder, 5월 30일)와 성녀 엠밀리아(Emmilia, 5월 30일)의 아들로서 335년경 카파도키아(Cappadocia, 오늘날 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태어나 그의 형인 성 대 바실리오(1월 2일)와 누나인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수사학과 철학을 배우고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어 테오세베이아(Theosebeia)와 결혼하였다. 그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으나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오(1월 2일)의 영향으로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370년에 형인 성 대 바실리오가 카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고, 이듬해에 그 또한 아르메니아(Armenia) 지방 니사의 주교가 되었다.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us)를 이단으로 선언한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신앙을 확고히 받아들였기에 발렌스 황제의 비호를 받는 아리우스파의 끊임없는 공경을 받았다. 결국 폰투스(Pontus)의 집정관으로부터 교회 재산을 남용했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었다가 376년 추방되었다. 그리고 발렌스 황제가 죽은 뒤인 378년에 복직되었다. 하지만 이듬해에 성 대 바실리오가 선종하자 형의 뒤를 이어 교회와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저술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379년 그는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을 단죄한 안티오키아(Antiochia) 교회 회의에 참석하였고, 이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아라비아의 이단들을 척결하도록 파견되었다. 그리고 폰투스 지방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 인근 이리스(Iris) 강변에 있는 수녀원으로 누이인 성녀 마크리나 원장을 만나러 갔는데 다음날 병으로 세상을 떠나 같은 해에 정신적 지주였던 형의 누이를 모두 잃었다.

   그 후 380년에 그는 주교 선거 감독과 니케아 신앙을 고백하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세바스테(Sebaste)를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게 그곳의 주교로 그 자신이 선출되었다. 몇 달을 그곳에 머물며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동생 성 베드로(Petrus, 3월 26일)에게 주교직을 위임하고 니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인 381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아리우스 이단과 아폴리나리우스파 이단에 맞서 싸우며 니케아 공의회의 선언문을 재확인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394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것을 마지막으로 기록에 더는 등장하지 않아 그 무렵에 선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방 정교회는 395년 1월 10일경 선종한 것으로 보고 매년 1월 10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해왔다. 가톨릭교회의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방 정교회와 같은 1월 10일로 목록으로 옮겨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성 그레고리오는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오와 함께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로 칭송을 받고 있다. 그는 특히 카파도키아 교부 중 가장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서는 교리서 · 수덕서 · 연설문 · 설교문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신학적 논쟁을 다룬 교리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에우노미우스 논박”(Adversus Eunomium)으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뛰어나게 논증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강조하여 니케아 공의회의 그리스도론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제2차 니케아 공의회(680~681년)는 그를 ‘교부 중의 교부’로 선포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그레고리오, 니사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959-9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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