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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죽은 이들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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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03 조회수124 추천수1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죽은 이들을 위한 노래

 

 

죽음은 항상 안타깝고 슬프다.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도 죽은 이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아마도 그 순간 우리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음에서 비켜날 수 없고, 그 죽음의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껴서일까?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곡

 

죽음 앞에서 모든 이는 평등하다, 부와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게도, 하루하루의 끼니가 걱정되는 이들에게도. 죽음은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모두가 슬퍼하는 엄숙한 죽음의 자리에, 음악은 그 사치스러운 겉모습을 잠시 거둬 내고 슬퍼하는 이들을 달래며 함께해 왔다. 그렇지만 음악이 죽음을 기념하는 방법은 시대와 장소,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추모해 왔는지 보여 주는 하나의 문화적 지표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

 

서양 예술 음악의 전통에 속한 작곡가 대부분은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곡’, 곧 ‘레퀴엠’(requiem)을 작곡했다. 모차르트를 필두로 베르디, 포레, 베를리오즈, 브람스 등의 거장들이 모두 ‘레퀴엠’을 남겼다.

 

이들 말고도 15세기 오케겜, 17세기 빅토리아, 18세기 케루비니, 19세기 드보르자크, 20세기 뒤뤼플레, 브리튼, 리게티에 이르기까지 레퀴엠을 작곡한 작곡가들만 살펴보아도 지난 600년 동안 서양 음악 역사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레퀴엠을 통해 그 시대가 죽음을 어떻게 기념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레퀴엠은 모두 같은 전례문을 가지고 작업함에도 한 시대의 소리를 지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곡가들이 그 사회와 문화에 속해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이 만들어 낸 소리가 그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레퀴엠의 특징

 

모차르트가 1791년에 작곡한 레퀴엠에는 죽은 자가 하느님 앞에서 받는 마지막 심판을 알리는 엄중한 나팔 소리가 나온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1874년에 작곡된 베르디의 레퀴엠에서 들을 수 있는 심판의 날은 무시무시한 팀파니 소리로 시작된다. 두 소리는 다르지만, 이 레퀴엠들은 모두 살아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이다.

 

그런가 하면 1890년 완성된 포레의 레퀴엠에서는 아예 ‘분노의 날’(dies irae) 기도문이 생략되었다. 그의 레퀴엠에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렵고 무서운 이 세상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 너머의 세상을 희망하게 해 주는 과정일 뿐이다.

 

20세기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1958년에 ‘전쟁 레퀴엠’을 남겼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코벤트리대성당을 기념하고자 작곡되었다. 정부는 폐허가 된 옛 건물을 그대로 두고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했다. 대신 그 옆에 새 성전을 지어서 봉헌했는데, 이 성전의 축성 미사 때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 처음으로 울려퍼졌다.

 

전쟁 당시 자신의 동반자와 함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던 브리튼은 이 레퀴엠에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그의 레퀴엠은 20세기 예술가의 정치적 신념이 담긴 그릇이기도 했다.

 

레퀴엠에 대한 지난날 서양 음악의 유산들은 모두 ‘작곡가’라는 존재와 그들이 남긴 ‘악보’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예술 음악 전통에 속한 것들이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서 작곡가들은 레퀴엠을 전례 음악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연주회용 음악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연도, 노래로 부르는 위령 기도

 

이 시기 우리 땅에서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에 음악을 사용하고 있었다. ‘연도’라고 하는, 곧 노래로 부르는 위령 기도가 19세기 후반 이 땅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1864년 한국 천주교회의 첫 공식 기도집인 「천주 성교 공과」에는 연도를 천주교 장례 예식에 사용했음을 추측하게 하는 기도들이 실렸다. 이 기도집은 1972년 「가톨릭 기도서」가 출간되기 이전까지 100년 이상 사용된 한국 교회의 공식 기도서였다.

 

그 뒤 1865년 한국 천주교회의 장례 예절에 대한 예식서인 「천주 성교 예규」가 별도로 출판되었다. 이 예식서는 과거 연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바쳐졌는지를 다루기 때문에 연도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이 예식서를 전통 상제례와 현대 감각에 맞추고 그 깊이를 더하여 펴낸 예식서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상장 예식」이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죽은 이들을 위한 예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은 이러한 예식서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죽은 이를 위한 기도문을 그냥 읊은 것이 아니라, 이 기도에 전통 가락을 얹어 바쳤다는 점이다.

 

초기 천주교회는 당시 교리에 따라 제사 지내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유교의 관습과 제도가 뿌리 깊었던 이 땅에서 제사 금지는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제사 문제는 19세기 내내 이어졌던 천주교 박해의 중대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도는 유교 사상에서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도리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던 부모 공경에 관한 내용을 존중하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연도는 문화적 충돌 지점을 지닌 두 종교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 낸, 일종의 혼합 문화의 한 형태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네 선조에게 연도는 슬픔의 통곡이 아니었다. 신앙 선조들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865년 출판된 「천주 성교 예규」의 제2권, ‘상례문답’은 이렇게 말한다.

 

“교우의 죽음은 도리어 가히 즐거워하고 경하할 것이라. 어찌 몹시 서러워 통곡하리요. 그러나 만일 본성의 눈물을 금치 못하면, 멀리 이별한 연고로 가히 울 것이로되, 아주 영원히 잃은 줄로 울진 못할지니, 대개 장래에 우리 다시 서로 만나 서로 즐길 바람이 있음일새니라.”

 

이 땅에서 천주교회가 자발적으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듯이, 연도 또한 우리 신앙 선조들이 만들어 낸 문화이자 소중한 음악적 자산이다.

 

각 나라의 시대별 문화가 죽음을 추모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분명 한국 천주교회의 문화가 죽음을 기리는 방식은 한층 더 특별했다.

 

* 정이은 안드레아 - 서울대학교와 국민대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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