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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어서 가 경배하세에 얽힌 이야기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2 조회수4,664 추천수1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어서 가 경배하세’에 얽힌 이야기들

 

 

성탄 시기가 시작되면 거리는 음악으로 넘실거린다. 때로는 과할 정도로 캐럴을 트는 방송 매체와 백화점, 상점들은 온 세상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축제의 음악이 된 ‘캐럴’

 

오늘날의 캐럴은 그것의 종교적인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축제의 음악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성탄 시기를 겨울 휴가철과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서구 사회에서 캐럴이 축제의 음악으로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성탄절에서 연초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의 황금연휴를 어찌 음악 없이 즐기랴. 서구인들에게 캐럴은 분명 다가오는 연휴와 관련된 마음을 들뜨게 하는 소리일 것이다.

 

본디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캐럴이라는 장르가 오늘날 세속적인 축제의 음악이 된 것은 아마도 그들 삶의 풍경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캐럴은 갈수록 근본적으로 탈종교화 된, 자본 중심의 사회를 살아가는 서양 사회가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캐럴을 이용하는 방식이 서구 사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근대화의 과정이 곧 서구화를 의미했던 우리 삶의 풍경이 서구인들의 삶과 점차 유사한 모습으로 닮아 갔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캐럴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탄생지가 영국이라 알려진 캐럴은 본디 중세에 시작된 노래의 한 형태이다. 중세 잉글랜드 지방의 캐럴은 후렴이 있는 여러 절로 된 단성부 노래였다. 영어와 라틴어로 된 가사의 내용은 다양했다. 동정녀이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노래도 중세에는 캐럴의 형태로 불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캐럴은 점차 성탄절과 관련된 노래를 일컫는 말이 되기 시작했다.

 

중세 영국 왕실에서는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곤 하였다. 이 노래를 중세 프랑스의 원무를 의미하던 ‘carole’이라 불렀고 이것이 ‘캐럴’(carol)의 기원이 되었다. 다시 말해 캐럴은 처음부터 성탄 축제와는 밀접한 관련이 없었고, 또 대중의 노래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것을 대중이 부르면서 캐럴은 ‘대중의 종교 음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성탄 시기에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어서 가 경배하세’ 작곡가는 누구?

 

오래된 캐럴들이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오래된 캐럴들은 마치 민요처럼 대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변형되기도 했고 새로운 이야기가 입혀지기도 했다.

 

「가톨릭 성가」 102번에 수록된, 아마도 가장 많이 불리는 성탄 성가 가운데 하나인 ‘어서 가 경배하세’가 바로 그런 특징을 보이는 캐럴이다. 이 노래의 본디 제목은 라틴어 ‘adeste fideles’(오라, 믿는 자들이여)였으나, 이는 다시 19세기에 오늘날 사용되는 영어 제목인 “O come, all ye faithful”로 번역되었다.

 

「가톨릭 성가」에는 이 노래의 작곡가가 ‘존 프랜시스 웨이드’(John Francis Wade, 1711-86년)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이는 그렇게 간단히 명시할 일은 아닌 듯하다. 웨이드 말고도 이 노래를 만든 사람으로 꼽히는 후보가 더 있으니 말이다. 영국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레딩(John Reading, 1645-92년),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주앙 4세(João IV, 1604-56년) 등이 이 곡의 작곡가로 거론되는 후보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존 인물인 세 사람 사이에는 그들이 살았던 시기와 장소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는 점이다. 웨이드는 18세기 사람이고, 레딩과 주앙 4세는 17세기 사람이었다. 또한 주앙 4세는 포르투갈, 웨이드와 레딩은 영국 출신이었다. 이 곡이 웨이드가 작곡한 곡으로 전해지게 된 사유는 웨이드가 1744년 출판했던 성가 모음집에 이 곡이 실렸고, 이는 최초로 출판된 ‘어서 가 경배하세’의 악보였기 때문이다.

 

웨이드는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벨기에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부설 학교에 다니며 옛 악보를 해독하고 현대식으로 옮기는 방법을 배웠다. 그 뒤 당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중세나 르네상스의 옛 악보들을 필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 필사가로 활동하며 영국 땅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부활을 이끌었다. ‘어서 가 경배하세’의 최초 출판본이 실린 모음집은 바로 웨이드가 필사한 옛 성가들을 모은 책이었다.

 

웨이드가 출판한 ‘어서 가 경배하세’ 악보는 오늘날의 기보가 아닌,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그레고리오 성가를 기보하던 방식에 사용되었던 사각 음표를 오선보에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것은 이 노래가 속한 시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했다.

 

 

‘어서 가 경배하세’는 포르투갈 성가?

 

한편 ‘어서 가 경배하세’는 ‘포르투갈 성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곡의 작곡가로 거론되는 또 다른 후보인 포르투갈의 주앙 4세 왕과 관련된 이야기다.

 

포르투갈을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시킨 주앙 4세는 이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광대한 식민지를 두며 강력한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한 포르투갈의 영웅이다. 음악과 미술의 열렬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악보를 소장한 도서관을 보유하기도 했다. 이 도서관에서 소장하거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곡의 필사본이 후대에 전해졌다. 이 곡을 웨이드가 작곡했다는 추정과는 반대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서 가 경배하세’의 작곡가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모두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곡을 헨델이 작곡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독일의 작곡가 글루크(Gluck, Christoph Willibald)가 작곡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곡이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캐럴이었는지, 또 대중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음악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리에서 캐럴을 들으며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사건이 전해 주는 울림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망각조차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어서 가 경배하세’라는 노래가 지난 수백 년간의 시간 속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듯이 이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성탄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는 한 계속 전해질 것이다.

 

* 한 해 동안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를 써 주신 정이은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정이은 안드레아 - 서울대학교와 국민대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2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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