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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클레식 문화의 발전은 교회의 몫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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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유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1-27 조회수1,395 추천수5 반대(0)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불광동 성당에서 대건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는 이유재 안드레아 입니다. 그동안 음악전공 자로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제가 느낀점을 앞으로 약 3회에 걸쳐 올려 보려 합니다.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목 : 한국 클레식 문화의 발전은 교회의 몫이다.

 

악의 역사는 종교를 떼어놓고는 이야기 하기 어렵다.

특히 서양음악의 역사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시작되고 발전하여 왔다.

서양음악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악보는 미사등의 종교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를 위해서였고 이를 만든 분 역시 당시 교황이신 그레고리오 성인이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들의 대부분은 교회음악을 만들었고 교회에서 공부했고 월급을 받은 경우가 많다. 교회가 음악의 발전에 얼마나 카다란 역할을 했는가는 종교개혁이후의 각 나라별 음악의 발전상황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종교개혁이전 서양음악을 주도하던 작곡가 그룹은 당연히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후 서양음악의 주도권은 독일로 넘어 간다. 이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바그너 등 바로크이후 대부분의 서양음악 작곡가들이 독일 태생이라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왜 일까?

그것은 종교개혁후 루터파와 칼빈파의 셩격을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 루터는 예배에 있어서 음악을 중요시 한 사람이며 자신 역시 뛰어난 수준의 음악가였다. 당연히 루터파가 주도한 독일의 음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칼빈은 그렇지가 못했다.   칼빈파가 주도한 프랑스의 교회는 교회의 전례에 사용되던 모든 음악을 없엤으며 심지어 교회의 오르간 마저 없에 버리기도 했다.

그결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음악문화 자체의 쇠퇴를 가져 왔고 프랑스는 이후 18세기 말이나 들어서야 다시 유명 작곡가들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예전에만 국한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현실을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가 클레식 메니아가 아닌이상 클레식 음악을 접할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나마 가장 클레식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교회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성가는 대부분 클레식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이 부르는 가톨릭 성가에는 세계의 유명 작곡가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등의 음악이 많이 들어있으며 또한 가톨릭 성가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이러한 클레식 음악의 형태로 작곡 되어져 있다.

이것이 곳 클레식음악이 아니겠는가. 교회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서 이러한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겠는가. 결국 지금의 음악문화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많이 교회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문화는 곳 산업이며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고수익 사업이다.

즉 교회는 이러한 클레식 음악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

다음에는 우리나라 교회가 클레식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야할 노력은 어떤 것이며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피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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