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2 장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 제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
- 제1단락 예수님과 이스라엘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574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명을 시작하신 초기부터, 일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뜻을 모았다.(338)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들(마귀를 쫓아내심,(339) 죄를 용서하심,(340)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심,(341) 율법상의 정결에 대한 독창적 해석,(342) 세리와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심(343) )을 보고 악의를 가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마귀에 들렸다고 의심하기도 했다.(34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모독하고(345) 거짓 예언을 한다고(346) 비난받았다. 이러한 것들은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는 벌을 받는 종교적 죄였다.(347)
- 575 그러므로 예수님의 많은 행동과 말씀은 일반 하느님 백성에게(348) 보다는, 요한 복음이 흔히 ‘유다인들’이라고 부르는(349)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더욱 “반대를 받는 표징”이었다.(350) 물론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관계가 단지 논쟁을 벌이는 관계만은 아니었다. 예수님께 닥칠 위험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은 바리사이들이다.(351)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12장 34절에 나오는 율법 학자의 경우처럼,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칭찬하시고, 여러 번 바리사이들의 집에서 식사를 하신다.(352)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의 부활,(353) 신심 행위(자선, 단식, 기도),(354)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습,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계명의 중심이라는 점 등, 하느님 백성의 이 종교 엘리트들이 주장하는 여러 교리에 동조하신다.(355)
- 576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선택된 백성의 근본 제도를 거슬러 행동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제도들이란,
- - 성문화된 계율을 완전히 지켜 율법에 복종하며, 바리사이들의 주장대로 구전되는 해석까지도 받아들임으로써 율법에 복종함;
- - 하느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머무르시는 거룩한 장소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지닌 중심적 특성;
- - 어떤 인간도 그 영광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 등이다.
- I. 예수님과 율법
- 577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의 첫머리에 율법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셨다. 그분께서는 시나이 산의 ‘첫 계약’ 때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새 계약’이 주는 은총의 빛으로 해석하셨다.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 578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며, 따라서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율법의 가장 작은 계명까지도 완전히 지킴으로써 율법을 성취해야 한다고 믿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율법을 완벽하게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시다.(356)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고백했듯이, 율법을 가장 작은 계명까지 완전하게 지키지 못했다.(357)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해마다 속죄일에 율법을 어긴 그들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다. 실로 율법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며, 야고보 사도가 환기시키듯이,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야고 2,10).(358)
- 579 율법은 그 문자뿐만이 아니라, 그 정신까지도 전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바리사이들에게 소중한 원칙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 시대의 많은 유다인들을 극단적인 종교적 열성으로 몰아갔다.(359) 이 극단적 열성은 ‘위선적인’ 결의론(決疑論)에 떨어지거나,(360) 아니면 오로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한 사람의 의인에 의해 율법이 완성되는 새로운 하느님의 개입에 대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361)
- 580 율법의 완전한 성취는 성자의 위격으로 율법의 지배 아래 태어나신(362) 하느님이신 입법자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께는 율법이 더 이상 돌 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의 “가슴에”, 곧 그 “마음에”(예레 31,33) 새겨진 것으로 드러난다. 그 ‘종’은 “성실하게 공정을 펴기”(이사 42,3) 때문에 “백성을 위한 계약”(이사 42,6)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시어,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363) 사람들이 받는 “율법의 저주”를 스스로 받기까지 하신다.(364)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돌아가셨기”(히브 9,15) 때문이다.
- 581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의 눈에 ‘율법 교사’(랍비)로 비쳐졌다.(365) 예수님께서는 종종 율법 교사들의 율법 해석 방식으로 이론을 펴신다.(366) 그러나 동시에 율법 학자들과 충돌하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해석을 그들의 해석 범주 안에서 제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태 7,29). 모세에게 글로 쓰여진 율법을 주시기 위하여 시나이 산에서 울려 퍼졌던 하느님의 말씀이, 행복 선언을 하신 산 위에서 예수님을 통해 다시 들리는 것이다.(367) 그 ‘말씀’은 율법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식으로 궁극적 해석을 내려 율법을 완성하신다.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마태 5,33-34). 이러한 하느님의 권위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368) 바리사이들이 고집하는 일부 “사람의 전통”(369) 을 비난하신다.
- 582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해석으로 율법의 ‘교훈적인’(370) 의미를 밝히심으로써 유다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음식물의 정결에 관한 율법을 완성하신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18-21). 하느님의 권위로써 율법에 관한 결정적인 해석을 내놓으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표징(기적)으로 보증을 받고 있는(371) 율법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부 율법 학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특히 안식일 문제가 그러하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율법 교사식 논법을 사용해서,(372) 하느님에 대한 봉사나(373) 병 고침을 통한 이웃에 대한 봉사가(374) 안식일의 휴식을 침해하지는 않음을 일깨우신다.
- II. 예수님과 성전
- 583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앞서 왔던 예언자들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최상의 경의를 표하셨다. 태어나신 지 40일 만에 요셉과 마리아는 그분을 성전에서 봉헌하였다.(375) 열두 살이 되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성부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양친에게 일깨우시고자 성전에 남아 있기로 결정하신다.(376) 나자렛 생활 동안 해마다 적어도 파스카 축제 때에는 성전에 올라가셨으며,(377) 공생활 동안에도 유다인들의 큰 명절에는 주기적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하셨다.(378)
- 58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로서 성전에 올라가셨다. 예수님께는 성전이 당신 아버지의 거처이며, 기도하는 집이다. 그래서 성전 앞뜰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든 것에 분개하신다.(379)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신 것은 당신 아버지에 대한 열정적 사랑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시편 69(68),10)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요한 2,16-1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사도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을 계속 존중하였다.(380)
- 585 한편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 직전에 그 찬란한 건물의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381) 이로써 당신의 파스카와 더불어 열리게 될 마지막 때의 징표를 예고하신 것이다.(382) 그러나 이 예언은 그분께서 대사제의 집에서 신문을 당하실 때 거짓 증인들이 왜곡하여 고발하였고,(383)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이 말은 조롱이 되어 예수님께 되돌아왔다.(384)
- 58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중요한 교리를 가르치신 성전에(385) 대해 적의를 가지시기는커녕,(386) 장차 이루실 당신 교회의 초석으로 세우신(387) 베드로와 함께 성전 세를 바치기를 원하셨다.(388)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확실한 거처라고 소개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성전과 동일시하셨다.(389)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를 죽음에 처한다는 것은 구원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감을 나타내는 성전 파괴를 예고하는 것이다.(390)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391)
- III. 구원자이신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과 예수님
- 587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 때문에 예수님을 “반대”하였지만,(392) 그들에게 진정으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죄인들을 속량하시는 그분의 소임이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393)
- 588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식사하실 때처럼(394) 세리들과 죄인들과도 친하게 식사를 하심으로써, 바리사이들을 놀라게 하셨다.(395)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루카 18,9)(396) 사람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단언하셨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 앞에서, 죄는 보편적인 것이므로(397) 구원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눈이 먼 것이라고 선언하신다.(398)
- 589 예수님께서 특히 죄인들에 대한 당신의 자비로운 태도가 하느님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개했다.(39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써(400) 그들을 메시아의 잔치에 받아들임을 암시하기까지 하셨다.(401)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으셨다. 그들이 놀라서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하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 아니던가-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셨으니, 이는 인간으로서 하느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여 하느님을 모독한 것이거나,(402) 그게 아니라면 그 말씀은 진실이며, 그분의 인격은 하느님 이름을 드러내고 계시하는 것이 된다.(403)
- 59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기에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마태 12,30)고 하는 절대적 요구를 정당화하실 수 있으며, 당신을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마태 12,41-42)이고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404) 말씀하실 때에도, 다윗이 당신을 그의 주님 메시아라고 불렀다는 것을 상기시키실 때에도,(405)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하고 단언하실 때에도,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모두 그러하다.
- 59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당신을 믿으라고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요구하셨다.(406) 그러나 이러한 신앙 행위는 하느님 은총의 인도로(407) “위로부터 태어나기”(408)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죽는 신비로운 죽음을 거쳐야 했다. 이토록 놀라운 약속의 성취에 직면하여(409) 회개하라고 하는 이러한 요구는, 의회 법정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고 판단한 비극적 오해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410) 의회 의원들이 이렇게 한 것은 “무지한 탓”이기도(411) 했고, 또 “완고한”(412) 불신 때문이기도 했다.(413)
- 간추림
- 592 예수님께서는 시나이 산의 율법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성취하셨다.(414) 그 궁극적 의미를 밝혀 주시고,(415) 율법을 어긴 죄들을 속량하시어(416)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신 것이다.(417)
- 593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순례 명절마다 성전에 올라가심으로써 성전을 존중하셨고,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이 거처를 열렬히 사랑하셨다. 성전은 예수님의 신비를 미리 드러낸다.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신 것은, 곧 당신 자신의 죽음과, 당신의 몸이 결정적인 성전이 될 구원 역사의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어 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 594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와 같은 일들을 행하셨는데, 이는 당신께서 바로 구원자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418)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419) 오히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라고(420) 여긴 일부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