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3 장 성령을 믿나이다
- 제8절 “성령을 믿으며”
- III. 약속의 시대에서 하느님의 영과 말씀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702 태초부터 “때가 찼을 때”까지(50) 아버지의 ‘말씀’과 ‘영’의 공동 사명은 숨겨진 상태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영’은 그동안 메시아의 때를 준비하고 계셨으며, 두 분 다 아직 완전히 계시되지는 않으셨지만, 그분들을 기다리고, 나타나시면 영접하도록 약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교회는 구약 성경을 읽을 때(51)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52) 성령께서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53)
- 교회의 신앙은 ‘예언자들’을, 하느님의 말씀을 힘차게 선포하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기록하도록 성령께서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모든 사람들로 이해한다.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성경을 율법서(처음의 다섯 권 또는 모세 오경)와 예언서(우리가 역사서와 예언서라고 부르는 책들)와 성문서(지혜 문학, 특히 시편)로 구분한다.(54)
- 창조에서
- 703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숨결’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이다.(55)
-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만물을 다스리고 거룩하게 하시고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성령께서 하느님으로서 성부 안에서 성자를 통해 만물을 유지하시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권한은 당연히 그분께 속한다.(56)
- 704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손(곧 성자와 성령)으로 만드셨다.……그리고 그의 육신에 당신의 모습을 그려 넣으셔서, 눈에 보이는 것까지도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셨다.”(57)
- 약속의 영
- 705 죄와 죽음으로 그 모습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하느님의 모습”, 성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을 상실하였으며”,(58) 그 ‘유사성’을 잃어버렸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으로 구원 계획이 개시되는데, 이 계획의 정점에서 성자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59) 그 ‘영광’, 곧 만물을 ‘살리시는’ 성령을 주시고 성부에 대한 ‘유사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 706 인간적으로 볼 때 모든 희망이 사라졌음에도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성령의 힘과 신앙의 결실인 후손을 약속하신다.(60) 이 후손을 통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이 축복받게 될 것이다.(61) 이 후손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62) 이분께 부어지는 성령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아들이실 것이다.(63) 하느님께서는 맹세를 통하여(64)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실 것을 미리 약속하셨으며,(65) 하느님께서 당신 것으로 삼으신 백성의 구원을 준비할 “약속의 성령”을(66) 보내 주실 것도 약속하셨다.
- 하느님 발현과 율법에서
- 707 하느님 발현(Theophania)은 성조들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호수아로부터 대예언자들의 사명을 시작하게 한 환시에 이르기까지, 이 ‘약속’의 행로를 밝혀 준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러한 하느님 발현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성령의 구름에 감싸인 채 자신을 보여 주거나 듣게 해 준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정해 왔다.
- 708 하느님의 이런 교육법(paedagogia)은 특히 율법의 부여에서 드러난다.(67) 율법은 하느님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한 ‘감시자’(paedagogus)로서 주어졌다.(68) 그러나 율법은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잃은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없고,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잘 알게 해 주어(69) 성령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시편의 탄식들이 이를 증언한다.
- 이스라엘 왕국과 유배에서
- 709 ‘약속’과 ‘계약’의 징표인 율법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비롯된 백성의 마음과 제도를 지배해야만 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5-6).(70) 그러나 다윗 이후에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처럼 왕국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에게 약속하신 나라는(71) 성령께서 세우실 나라이며, 이 나라는 성령을 따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 710 율법의 망각과 계약에 대한 불성실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유배가 그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속의 실패이지만, 사실 이 유배는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성실성을 신비롭게 드러내는 것이며, 약속된 회복 곧 성령에 따른 재건의 시작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러한 정화를 거쳐야만 했다.(72) 유배 생활은 하느님의 계획에서 이미 십자가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며, 유배에서 돌아온 가난한 ‘남은 자들’은 교회의 매우 분명한 표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 메시아와 그분의 영을 기다림
- 711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19). 여기서 예언의 두 줄기 흐름이 윤곽을 드러낸다. 그 하나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영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희망 중에 “이스라엘의 위로”와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루카 2,25.38) 소수의 ‘남은 자들’ 곧 가난한 백성들(73) 안에서 하나로 합해진다.
- 지금까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메시아와 그분의 영 사이의 관계가 더 분명히 드러나는 예언들만을 다루기로 한다.
- 712 기다려 온 메시아의 모습은 ‘임마누엘의 책’에서(74) 나타나기 시작하며(“이사야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요한 12,41), 특히 이사야 11장 1-2절이 그러하다.
-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 713 메시아의 모습은 특히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 드러난다.(75) 이 노래들은 예수 수난의 의미를 예고하며,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성령을 널리 주실 것인지를 알려 준다. 그 방식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종의 모습”(필리 2,7)을 취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몸소 짊어지심으로써 당신 생명의 영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게 된다.
- 714 그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이 대목을 당신의 것으로 삼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신다(루카 4, 18-19).(76)
-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715 성령의 파견과 직접 관련되는 예언서 본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마음에 ‘약속’의 언어로 사랑과 성실의 어조로 말씀하시는 예언이며,(77) 베드로 사도는 성령 강림 날 아침 이 예언의 성취를 선포하게 된다.(78) 이 약속들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령께서 새로운 율법을 새겨 주심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그분은 흩어지고 갈라진 백성들을 다시 모아 화해시키실 것이며, 첫 번째 창조를 새롭게 하시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평화 중에 사람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 716 하느님의 신비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인간의 정의가 아닌 메시아의 정의를 기다리는 “가난한”(79) 백성들, 곧 겸손하고 양순한 사람들이, 마침내 약속의 시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위대한 숨은 활동이다. 성령께서 정화하시고 밝게 비추어 주신 사람들의 마음이 시편에서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을 주님께 마련해 드린다.(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