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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과 질병
  • 1500 인생을 가장 괴롭혀 온 문제들 중에는 늘 질병과 고통이 들어 있다. 질병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 유한성을 체험한다. 모든 질병은 죽음을 예감하게 한다.
  • 1501 질병은 우리를 번뇌로 이끌기도 하고, 자신 안에 도피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하느님에 대한 실망과 반항으로까지 이끌 수도 있다. 반면에 질병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도 있고, 그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본질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질병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 하느님 앞의 병자
  • 1502 구약 성경의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병으로 고통당한다. 하느님께 자신의 병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고,(97)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치유를 애원한다.(98) 질병은 회개의 길이 되고,(99) 하느님의 용서는 치유의 시발이 된다.(100) 이스라엘은, 병이 신비하게 죄와 악과 관련되어 있으며,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충실하면 생명을 돌려받는다는 것을 체험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26). 예언자는 고통이 타인의 죄를 속량하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101) 마침내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시온을 위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실 때가 오리라고 예고한다.(102)
  • 의사이신 그리스도
  • 1503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을 동정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은(103)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고(104)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명백한 표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가지셨다.(105)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고쳐 주려고 오셨다. 그분께서는 병자들에게 필요한 의사이시다.(106) 그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하셨다.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나를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 병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은,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각별한 관심을 오랜 세월 동안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특별한 관심은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 주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의 근원이다.
  • 1504 예수님께서는 자주 병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셨다.(107) 예수님께서는 침을 바르고 안수하시며,(108) 진흙을 바르고 물로 씻는(109) 표징들을 사용하여 병을 고치신다. 병자들은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준”(루카 6,19) 것을 보고 모두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였다.(110) 이처럼 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치유하시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만지신다.’
  • 1505 이렇게 많은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이 당신을 만지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불행을 당신의 불행으로 여기신다. “그분은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마태 8,17).(111)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를 다 고쳐 주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징표들이었고, 더 근본적인 치유, 곧 당신 파스카를 통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악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고,(112) “세상의 죄”(요한 1,29)를 치워 없애셨다. 병은 단지 세상의 죄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속량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다.
  • “앓는 이들은 고쳐 주어라”
  • 1506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신다.(113)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병과 병자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가난하고 봉사하는 삶에 함께하도록 하며, 연민과 치유의 직무에 참여시키신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 1507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파견을 새롭게 하신다. (“내 이름으로……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마르 16,17-18). 그리고 주님께서는 교회가 당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표징들을 통하여 이 파견을 확인해 주신다.(114) 그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115) 것을 특별하게 나타낸다.
  • 1508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지닌 힘을 나타내신다.(116)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는 것을 배워야 했고, 또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콜로 1,24)는 의미가 있음을 배워야 했다.
  • 1509 “앓는 이들은 고쳐 주어라”(마태 10,8). 주님께 이러한 사명을 받은 교회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아울러 그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교회는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현존을 믿는다. 이 현존은 특별히 성사들 안에서 작용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인(117) 성체성사 안에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와 육체적 건강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118)
  • 1510 사도 시대의 교회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다. 야고보 사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성전(聖傳)은 이 예식을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의 하나로 인정하였다.(119)
  • 병자성사
  • 1511 교회는 일곱 성사 중에 특별히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성사가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병자성사가 그것이다.
  • 병자의 거룩한 도유는 진실되고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성사로 세우신 것이라고 마르코 복음서에 암시되고 있으며,(120) 주님의 사도이며 형제인 야고보가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선포한 것이다.(121)
  • 1512 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전례 전승에는 예로부터 축성한 기름을 병자들에게 발라 주는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자의 도유는 점차 죽을 위험이 더 큰 사람에게만 베풀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도유를 ‘마지막 도유’(종부 성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만일 그것이 병자의 구원을 위해 좋은 일이라면, 건강을 회복하도록 주님께 기도하는 것을 전례에서 배제한 적이 전혀 없다.(122)
  • 151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123) 교황령 “병자의 도유”(Sacram Unctionem Infirmorum, 1972년 11월 30일자)는 로마 예법에서 다음 사항을 준수하도록 규정하였다.
  • 병자성사는 위독한 병자들에게 베푸는 것인데, 정식으로 축성한 올리브 기름이나 때에 따라 다른 식물성 기름을 병자의 이마와 양손에 바르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한 번만 외운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