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성사의 경륜
- 제 2 부 교회의 일곱 성사
- 제 3 장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
- 제7절 혼인성사(婚姻聖事)
- I. 하느님의 계획과 혼인
제 2 부 교회의 일곱 성사
- 1602 성경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로 시작하여(94) “어린양의 혼인 잔치”(묵시 19,9)에(95) 대한 환시로 끝맺는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인과 그 “신비”, 혼인의 제정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의미, 그 기원과 목적, 구원의 역사를 통한 혼인의 다양한 실현, 죄로 생긴 혼인의 어려움과, 그리스도와 교회의 새로운 계약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1코린 7,39) 이루어진 혼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96)
- 창조 질서와 혼인
- 1603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인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으로 세워진다.……하느님께서 바로 여러 가지 선과 목적을 지닌 혼인의 제정자이시다.”(97) 혼인의 소명은 창조주의 손으로 지으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새겨져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가지 문화와 사회 구조와 사고방식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더라도, 혼인은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다. 그 다양성 때문에 혼인의 공통적이고 항구 불변한 특성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제도의 존엄성이 어디에서나 똑같이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98) 모든 문화는 혼인 결합의 숭고함을 인정한다. “개인의 행복,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99)
- 1604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또한 사랑에로 그를 부르셨다. 사랑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근본 소명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이신”(1요한 4,8.16)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100)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남녀 사이의 사랑이 당신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의 표상이 되게 하신다. 이 사랑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매우 좋은 것이다.(101) 그리고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이 사랑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창조된 세상을 지키는 공동 노력으로 실현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
- 1605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 2,18).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그의 살에서 나온 살”(102) 곧 그와 동등하며 아주 가까운 “협력자”로(103) 여자를 주셨다. 이처럼 여자는 우리의 도움이신(104) 하느님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주님께서는 친히 “처음부터” 창조주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환기시키심으로써,(105) 이것이 그들 두 생명의 확고한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태 19,6).
- 죄의 지배 아래 놓인 혼인
- 1606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서 또 자신 안에서 악을 체험한다. 이러한 체험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겪는 것이다. 예로부터 어느 시대에나 부부의 일치는 불화와 지배욕, 부정과 질투, 증오와 결별에까지 이를 수 있는 갈등의 위협을 받아 왔다. 이러한 혼란은 문화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더하거나 덜할 수 있고, 쉽게 극복되거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혼란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 1607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고통스럽게 확인하는 이 혼란은 남녀의 본성에서 오는 것도, 그들 관계의 본성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죄에서 오는 것이다. 하느님과 단절된 원죄의 첫 번째 결과는 부부의 원초적 친교가 단절된 것이다. 서로 비난함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왜곡되었고,(106) 창조주께서 주신 본래의 선물인 상호 간의 매력은(107) 지배와 탐욕의 관계로 변하고,(108)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땅을 지배하라는,(109) 남편과 아내의 아름다운 소명에는 출산의 고통과 생계유지라는 고생이 부과되었다.(110)
- 1608 창조 질서는 비록 몹시 손상되기는 했어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죄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부부에게 하느님 은총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의 도움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다.(111) 이 도움이 없으면 부부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인 두 인격의 일치를 실현하지 못한다.
- 율법으로 가르치던 시대의 혼인
- 1609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죄에 따르는 벌인 “아기 낳는 고통”과(112)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는”(창세 3,19) 일은 죄의 피해를 줄이는 구제책이기도 하다. 타락 이후 혼인은 자기 폐쇄와 이기주의와 쾌락 추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돕고, 자기를 내어 주는 데 도움을 준다.
- 1610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 해소성에 대한 윤리 의식은 옛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발달하였다. 성조들과 왕들의 일부다처제가 아직 명백히 배척되지는 않지만, 모세가 받은 율법은, 비록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흔적이 있고 또 그 때문에 모세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긴 했어도, 남편의 독단적 지배에서 아내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113)
- 1611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느님의 계약을 독점적이고 충실한 부부 사랑의 표상이라 보고(114)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 해소성을 깊이 이해하도록, 선택된 백성의 의식을 준비시켰다.(115) 룻기와 토빗기는 혼인과 부부의 신의와 애정이라는 고상한 의식에 대해 감동적인 증언을 담고 있다. 성전은, 아가에서 발견되는 “죽음처럼 강한” 사랑,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갈 수 없는”(아가 8,6-7) 사랑이라는 표현을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인간 사랑의 독특한 표현으로 언제나 여겨 왔다.
- 주님 안에서 맺는 혼인
- 1612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신 혼인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계약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심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당신이 구원하신 온 인류를 당신 자신과 결합시키셨으며,(116) 이로써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117) 준비하셨다.
- 1613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혼인 잔치에서 ─ 당신 어머니의 청을 들어 ─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다.(118) 교회는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신 일을 매우 중시한다. 교회는 이를 혼인의 선익에 대한 확인으로 여기며, 그때부터 혼인이 그리스도 현존의 유효한 표징이 될 것이라는 예고로 본다.
- 1614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시는 동안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원하신 부부 결합의 본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모세가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것이었다.(119) 부부의 혼인 유대는 해소될 수 없다. 이는 하느님께서 친히 맺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 1615 혼인 유대의 불가 해소성에 대한 이 분명한 강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수도, 또 실현할 수 없는 요구로 보일 수도 있었다.(120)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부들에게 모세의 율법보다 더 무겁고 감당하기에 벅찬 짐을 지우신 것은 아니었다.(121) 죄로 어지러워진 원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려고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에서 혼인 생활을 하도록 친히 힘과 은총을 주신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자신을 끊어 버리며,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써(122) 부부들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혼인의 본래 의미를 “파악하고”,(123) 이를 생활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혼인의 이러한 은총은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인 십자가의 열매이다.
- 1616 이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페 5,25-26). 그리고 다시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31-32).
- 1617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에는 부부애의 표상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세례가 이미 혼인 신비이다. 말하자면 세례는 성찬이라는 혼인 잔치의 음식을 먹기 전에 행하는 혼인을 위한 목욕인(124) 셈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는 계약의 효과적인 표징 곧 성사가 된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뜻하고 또 그 은총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세례 받은 사람들의 혼인은 신약의 참성사가 된다.(125)
- 하늘 나라를 위한 동정
- 1618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시다. 그리스도와 맺는 유대는 가정이나 사회의 다른 모든 유대보다 우선한다.(126) 교회는 초기부터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르고,(127)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며, 그분의 마음에 들고자 애쓰고,(128) 오시는 신랑을 맞으러 나가기 위하여(129) 혼인의 큰 선익을 포기한 남녀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모범이 되신 이러한 생활양식으로 당신을 따르도록 어떤 사람들에게 권고하셨다.
-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 19,12).
- 1619 하늘 나라를 위한 동정은 세례의 은총에서 꽃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 맺는 유대의 우월성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기다림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징이며, 또 혼인이 사라져 가는 현세의 실재임을(130) 상기시켜 주는 표징이다.
- 1620 혼인성사와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동정은 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두 가지 삶에 의미를 주시고, 당신 뜻에 맞게 살아가도록 필요한 은총을 주신다.(131)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동정에 대한 평가와(132) 혼인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 보완한다.
- 혼인을 비하하는 것은 그만큼 동정의 영광을 감소시키는 것이며, 혼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동정이 지닌 가치를 드높이는 것입니다.……요컨대 악과 비교해서만 선으로 보이게 되는 것은 참된 선이 될 수 없으니, 명백한 선보다 한층 더 나은 것이 참된 선이기 때문입니다.(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