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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19 “그리스도교 계시는……사회생활의 법칙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160) 교회는 복음서에서 인간에 대한 진리의 완전한 계시를 받는다.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의 품위와 사람들을 일치시켜야 할 그 소명을 인간에게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지혜에 부합한, 정의와 평화가 요구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 2420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161) 교회는 경제와 사회 문제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윤리 질서에 관해서 교회는 정치권력과는 다른 사명을 띠고 있다. 교회는, 공동선의 현세적인 국면들이 우리의 궁극 목적인 ‘최고선’을 위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교회는 현세의 재물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올바른 자세를 고취하고자 노력한다.
  • 2421 교회의 사회 교리는 19세기에 발전하였는데, 그 시대는 현대의 산업 사회가 소비재 생산을 위한 새로운 사회 구조, 사회와 국가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 그리고 노동과 소유의 새로운 형태 등의 문제로 복음과 마찰을 빚던 시대였다. 경제 사회 분야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발전한 것은, 교회의 가르침의 영속적인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언제나 살아 있고 활기찬 성전의 참된 의미를 증언하는 것이다.(162)
  • 2422 교회의 사회 교리는 점차로 분명해지고 체계화되어 가고 있다. 이 가르침은, 역사가 흐르는 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말씀 전체에 비추어서,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해석함으로써 교회가 점차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163) 이 사회 교리는 신자들의 행동에 반영될수록,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된다.
  • 2423 교회의 사회 교리는 성찰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판단의 기준들을 이끌어 내며, 행동의 지침들을 일러 준다.
  • 사회적 관계들이 오로지 경제적인 요소들로써만 결정되는 사회 체제는 모두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164)
  • 2424 이윤이 경제 활동의 유일한 원칙이며 궁극 목표라고 주장하는 이론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는다. 이 과욕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갖가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다.(165)
  • “생산 집단 조직을 앞세워 개인과 단체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166)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난다. 인간을 오직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모두 다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돈을 섬기는 우상 숭배로 이끌며, 무신론의 확산을 돕는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루카 16,13).
  • 2425 교회는, 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통하는 전체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를 배격하였다. 한편으로 교회는 ‘자본주의’를 시행함에서도, 개인주의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시장 원리의 절대적 우위를 거부하였다.(167) 중앙 집권적 계획만으로 경제를 조절하는 것은 사회적 유대들을 그 근본부터 변질시키며, 시장 원리만으로 경제를 조절하는 것은 사회의 정의를 위배하는 것이다. “시장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168) 올바른 가치 체계에 따라서, 그리고 공동선의 견지에서, 시장과 경제의 주도권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