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26. 올바른 행동에 대한 성찰 (3) 가장 중요한 안전과 생명, 우리 인식도 변해야(「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돈만 중시하는 풍조가 만든 ‘위험한 일터’ 마리아: 친구가 회사에서 업무 중에 화장실 간다고 시말서를 썼데요.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핸드폰 연락처 뒷자리 네 번호로 불린데요. 심지어 보안 때문에 핸드폰을 수거해 간대요. 이번에 불이 났는데 핸드폰이 없어서 신고도 못했데요! 베드로: 제가 아는 분도 그 회사에 다니는데 불이 났는데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고, 평소에 계속 얘기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데요. 포장 속도가 늦어지면 화면에 빨간 경고등이 뜨고 속도가 느리면 관리자가 온다고 하더라구요. 바오로: 사측은 이를 일체 부정하면서 사실을 왜곡한 처사라고 하더라구요. 정부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결과를 기다려 봐야하겠어요. 이 신부: 같이 이야기해보아요! 반복되는 참사 얼마 전 대형 물류 창고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지상 4층, 지하 2층, 축구장 15개 넓이의 건물이 전소되었고 발화성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고 구조가 복잡했기에 진화에도 6일이나 소요됐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은 전원 대피했으나 큰 재산 손실과 함께 진화작업 중 김동식 소방령이 순직했습니다. 사고원인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예정중이지만 화재가 초기 진압되지 못한 이유로 구조적 문제가 꼽힙니다. 높게는 10미터에 이르는 선반들이 복잡하게 세워져있어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합니다. 또한 복도에도 택배물품과 박스가 가득 쌓여있고 비닐 등의 포장재가 가득한 환경은 불이 번지기 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방화벽 설치 의무를 면제받는데(특례규정) 이것은 대형 컨베이어벨트들이 복잡하게 설치된 대형 물류센터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4개월 전 소방점검에서 277건의 위반사항을 지적받았습니다. 소방청이 제시한 ‘소방시설 등 종합정밀점검 실시 결과’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60건, 피난 유도시설 40건, 방화셔터 관련 26건, 화재수신기 이상 19건 등입니다. 최근 4년 사이에 전국의 대형 물류창고는 1800여 곳이 신설됐습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인데요, 방재대책은 부실하다는 진단이 많습니다. 위험한 업무환경은 만들어지는 것 저도 개인적으로 쿠팡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서비스 때문입니다. 배송기사님들에게는 꼬박꼬박 확인문자도 오고, 저도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종사자 중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사측은 규모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정규직 비율 30%로 추정) 노동강도에 비해 급여와 보상이 약하고 근무환경이 열악하다합니다. 사무실을 제외한 작업장에 에어컨과 히터가 없습니다. 공격적 경영에도 적자를 해소하지 못해 시설투자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송비나 상품비를 못 올리는 대신 인건비와 노동환경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쿠팡 사업장에서만 지난 해 과로사가 9건이나 발생했는데 로켓배송, 새벽배송같은 업무로 인해 기사들이 겪는 배송물량 증가와 심야작업, 장시간 노동, 휴식 미보장, 끼니 거르기,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높은 업무 강도 때문입니다. 사측은 비정규직을 많이 뽑은 게 아니라 근무시간 2년을 못 넘기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하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일이 힘들어서 퇴사율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타협될 수 없는 안전과 생명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업 평가에 있어 ESG를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환경보호(Environment), 사회공헌(Social), 윤리경영(Governance)입니다. 해당사업장은 ESG평가 결과 ‘위해’(위험과 재해) 관련 리스크 지표가 이미 ‘매우 위험’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안전과 생명, 노동인권 경시 관련 여러 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탈퇴와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구요. 기업이 잘되면 안전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겠지만 운영이 어렵고 적자가 누적되면 당연히 재해와 위험에 대한 대비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당연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첫째, 이는 결국 안전이나 생명보다 비용이나 이윤을 우선시하는 처사에 불과하고, 둘째로 생명에 관한 문제는 차선이 선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돈만 중시하고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이고 그 결과는 위험한 일터, 여전히 한 해에 2000여 명이 사망하는 현실입니다. 우리 모두 깊이 성찰하고 관심가져야 합니다. 평화의 이상은 “개인의 행복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람들이 신뢰로써 정신과 재능의 자산을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얻을 수 없다.”(간추린사회교리 495항) [가톨릭신문, 2021년 7월 4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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