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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견진성사를 통해 완전해지는 그리스도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6 조회수4,757 추천수0

견진성사를 통해 완전해지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영적 성숙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다. 견진성사는 세례로 인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더 깊이 뿌리 내리게 하며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주는 견진성사의 은총을 알아보자.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받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눈은 빛나고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는다. 그렇게 기뻐하는 표정은 바라보는 이조차 신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엄청난 선물을 받는다. 그 선물은 어떤 물건도 아닌 어떤 분, 곧 성령이시다. 그분의 활동을 우리가 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현실 안에서 함께하시며, 차츰 ‘성령의 열매’를 우리 삶 안에 드러내신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감탄을 자아낼만한 선물 꾸러미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셈이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 때 받은 성령의 은총을 더욱 풍성하고 굳건하게 만든다. 그러나 견진성사를 받는 이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이를 바라보는 신자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견진성사를 받았던가?’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는 듯하다. 미사 중에 진행되는 견진성사 예식은 어떤 감동도 남기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특별한 선물로 다가오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새로운, 수원교구’를 통해 견진 예식 안에 숨은 은총을 찾아보자.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선물을 뒤늦게 발견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견진성사는 통상적으로 주교의 집전으로 미사 중에 거행된다. 교회 초창기 때에 침례(浸禮)를 받은 후 성당에서 주교의 두 번째 도유와 안수를 받으면, 세례성사가 완성되었던 것에 유래되었다. 견진 받을 이들의 이름이 불리면, 차례로 주교 앞으로 나와 앞자리에 앉는다. 주교의 강론이 끝나면 견진 받을 이들은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시간을 가진다. 세례성사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예식을 통해 견진성사가 그리스도교 입문 전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주교가 묻는다. “악령과 그의 모든 일과 유혹을 끊어버립니까?” “예,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이 이어진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 스스로의 목소리로 답한다. “예, 믿습니다.”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한 성사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신앙인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하기 전에 견진성사는 지금의 ‘나’를 고백할 기회를 준다. 비록 너무나 부족한 자신이지만, 어려움 앞에서 도망치거나 구경만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교회는 신앙인들이 굳건해지는데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주교가 “자비로이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께서 당신의 풍요한 선물로 이들을 굳세게 하시고, 당신의 도유로 이들이 성자 그리스도를 완전히 닯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하면 교회 공동체는 “아멘”이라고 답한다.

 

 

사랑의 숨을 느끼다

 

신앙 고백이 끝나면 주교는 견진 받을 사람들 위에 손을 펴 들고 성령이 내려오시길 간구한다. 이 동작은 “아주 오래되고 품위있는 동작이다. 하느님의 영이 내려와 인간을 보호하고,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청한다는 의미”이다 (「견진성사」, 안셀름 그륀, 분도출판사 P. 36 참조).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 여기 있는 이 종들을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셨으니, 이 종들에게 보호자 성령을 보내 주소서. 지혜와 통찰의 영, 의견과 용기의 영, 지식과 공경의 영을 보내주시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의 영을 채워주소서.”

 

아이가 다치면 엄마에게 달려와 말한다. “호~해주세요.” 엄마는 상처 위로 입김을 불어준다. “곧 나을거야.” 입김은 어떠한 약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불어넣어주신다. 상처 받을까 두려워 닫혀있던 문을 열게 하신다(요한 20,19 참조). 그리고 성령께서 낡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몰아내시고 깨끗한 것으로 채우신다. 주어진 과제 앞에서 능력이 모자란다고 망설이고 있는가? 때론 감당하기 힘든 그분의 요구에 외면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삶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성령께서 도와주실 거라 약속하셨다.

 

 

날인을 받다

 

견진 받을 사람들이 한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대부모는 그의 어깨에 오른손을 얹고 따른다. 대부모가 견진자의 이름을 알려주거나 견진자 스스로 자기 이름을 말한다. 주교는 엄지손가락에 축성 성유를 찍어 그 사람의 이마에 십자형으로 바른다. “OOO,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 성경에는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 22).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성령의 이 날인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그분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표시인 동시에, 종말의 큰 시련 때에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1296항)라고 설명한다.

 

과거 종교 예식에서는 사람이나 사물에 기름을 발라 신의 권한과 능력, 신의 보호 등을 드러내었다. 또한 기름은 정화시키고, 유연하게 하며, 깨지고 상처 난 곳을 낫게 하는 치유를 상징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느님에게 속한 존재이며, 어떤 인간도 자신을 지배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마 위 십자가 날인을 하고 다녔다. 사도시대에 도유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연결시켜 생각되었다(2코린 2, 15-16 참조). 오늘날 신앙인들은 견진 예식 안에서 도유를 받고서 어떤 어려움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견진자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채우며 사랑의 기운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져 이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 하도록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93-1294항 참조).

 

견진성사가 지닌 효과가 온전히 발휘되기 위해서 그 예식 안에 숨은 의미도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견진성사가 왜 중요한지, 왜 이 성사를 받아야 하는지 교회의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견진성사를 떠올려보자. 당시 받았던 십자 인장이 아직 내 이마 위에 남아있다. 세상의 먼지가 붙어있지만 성령이 여전히 내 안에 계시며 내 안에서 싸우고 계시다. 그 믿음은 나를 변화시키고 물결처럼 세상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외침, 2017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이지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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