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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비자교리.....2006-09-22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9 조회수4,494 추천수0
 

제 2 편  지킬 계명

2006-09-22

오늘부터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내용은 우리 신앙을 설명하는 두 번째 부분으로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계명(誡命)이라는 말의 뜻은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계(誡):죄악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


이 계명은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는 이 ‘계명’이 부담스러운 것이 되기 마련이고, 한 가지나 혹은 몇 가지를 자의(自意)나 타의(他意)로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커다란 짐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갖는 계명에 대한 첫 번째 느낌입니다.


이렇게 구별할 수 있는 계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사람이기에 갖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하느님의 계명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람을 구속하거나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계명에 대한 이야기는 탈출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옵니다.  탈출기 20장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산에 도착한 것은 홍해바다를 건너 탈출한지 석 달째 되는 첫날(탈출기 19,1참조)이었다고 말하며,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운데에 계명을 받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신명기에 나오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지 40년째 되던 해, 11월 1일(신명1,3참조)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요르단 강 건너편 ‘느보산’에서 바라보며 예전의 가르침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계명은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제정된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고, 그 정신에 따라 살아간다면 하느님이 애초에 의도하신 뜻을 실천하는 길에 다가선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계명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내용도 같은 입장에서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형식대로, 이것만은 지켜야 하느님에게서 이런 저런 축복을 얻고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들어간 말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선물로 받는 것이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땀이나 수고를 바치거나 봉헌하고 그 대가로서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억지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단이 달라지면 사람이 삶으로 드러내는 모양도 달라집니다.


처음으로 다룰 것은 십계명(十誡命)에 대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삶에서 해야 할 실천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람은 믿는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을 구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한 가지입니다.  ‘가족들을 사랑한다’ 또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서 ‘가족이나 이웃이 내 사랑을 알아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르는 행동을 보여야 말하는 의미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듯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보서간 2,15-16. 신약 518쪽)


우리가 말을 한 다음에 그 말에 적합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계명이란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하고 살고 싶은데, 그 계명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제약하고 제한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제가 계명의 올바른 정신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때로는 저 역시도 거부감을 가질 때가 있고, 듣는 여러분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실천의 방법을 우리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됩니다.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올바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만큼 하느님께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는 법입니다.


<계명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화 - 송봉모 신부님의 강연테이프 기록>

① 어떤 사람이 사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가던 중 십계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신부님, 저는 십계명이 싫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왜 그리도 ‘무엇하지 말라’는 명령이 많습니까? 귀찮아 죽겠습니다.

신부는 그 사람의 얘기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몰라 암담해하면서 말없이 운전만 하였다. 그러던 중 그들이 타고 가던 차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동쪽은 어디로 가고, 서쪽은 어디로 간다는 이정표를 바라보고 있던 신부는 핸들을 그들이 가야 할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 사람이 놀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신부님, 어디로 가십니까?  이쪽으로 가야합니다.  지금 신부님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는 멀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대답하였다.  “이 사람아! 오른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하는 이정표는 귀찮아 죽겠네. 어디로 가면 어떤가. 그냥 내 마음대로 가게 내버려두면 안되나?”

 

② 한번은 어떤 사제가 신자들이 모인 곳에서 십계명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말하였습니다.  그 강론이 끝나고 나서 한 신자가 그 사제에게 찾아와 자기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오늘 하신 십계명에 대한 강론은 너무 솔직하고 강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아이들이 교회에 잘 나오려 하지 않는데, 이제는 더 멀리할 것 같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십계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렇게까지 강조하지는 마십시오.”  이러한 충고를 들은 사제는 일어나서 어딘가에 가더니 ‘극약’이라 써 붙인 약병을 들고 왔다. 그는 그 신자에게 약병을 들어 보여주며 말하기를, “제가 이 병에 붙어있는 ‘극약’이란 딱지를 떼어버리고 ‘꿀’이라고 써 붙이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위험할까요? 아니면 덜 위험할까요?”


우리가 여러 가지 입장과 환경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계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계명의 분류에 대한 구분

필로의 분류에 따른 십계명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에 따른 십계명

1.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2. 너는 무슨 우상이든지 숭배하지 말라

3.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을 하지 말라

9.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언을 말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1. 하나이신 하느님을 만유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2.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3. 주일을 지키고

4.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경하고

5. 사람을 죽이지 말고

6. 간음(姦淫)을 행하지 말고

7. 도둑질을 말고

8. 거짓 증언을 말고

9.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고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유다인 ‘필로’의 분류

프로테스탄트가 따르는 십계명

5세기에 나타난 새 분류



제 1 장 천주께서 내리신 십계명

십계명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상황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십계명은 대략 지금부터 3450년 전쯤에 하느님께서 모세라는 사람을 통하여. 지금의 이집트 땅, 시나이반도에 있는 사나이산에서 내리신 열가지 계명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약 400년간을 이집트땅에서 살고 나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리고 모세의 인도로 홍해바다를 건너 시나이반도로 들어섰고, 광야에서 90일을 이동하여, 시나이 산에 도착하고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이 계명(誡命, 종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저마다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서기 위한 조건이요, 실천사항이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고 대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같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대하는 입장과 태도에 따라 사물의 모양은 우리가 다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식 문제 때문에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의 비옥한 땅, 고센으로 이동한지 400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양식을 찾아 이동한 삶이 노예생활로 변모했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여 모세의 인도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뜰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 십계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계명에 대한 교회의 정신은, 앞선 1부에서 말씀드렸던 ‘믿을 교리’의 내용을 우리가 삶에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에 대한 이야기는 111항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구원이라는 선물에 다가서기 위한 인간의 실천규범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111. (문) 구령(救靈)하는데 교리를 믿기만 하면 되느뇨?

     (답) 그렇지 못하니, 또한 마땅히 천주십계와 천주교회 법규를 다 지키며 덕을 닦고 죄를 피할지니라.

112. (문) 천주십계는 무엇이뇨?

     (답) 천주십계는 천주께서 모세에게 시나이 산에서 발표하신 열 가지 계명이니라.


신앙인으로서 삶의 목적은 ‘우리 육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그 뜻을 알아듣는 영혼(靈魂)의 구원에 목적을 둡니다.  하지만 영혼은 순전히 영적인 존재로서 그 자체로는 선행도 그리고 악행도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선행이나 악행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우리의 몸, 우리 육신을 올바로 인도하고 다스리고 행동하게 하는 영혼이고, 그 영혼이 육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도하고 인도하였느냐에 따라, 훗날 그 영광을 영혼이 하느님에게서 받는다는 것이 11항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112항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역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제 1 절  :  제 1 계명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113. (문) 제1 계명에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뇨?

   (답) 제1 계명에 명하시는 것은 흠숭지례(欽崇之禮)로, 하느님을 만유(萬有)위에 공경하여 높임이니라.


세상의 사물 가운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 있다는 수백만 마리의 세균들이 그럴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니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세상을 이루는 요소는 그것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첫 번째 근원이시라고 믿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을 손바닥의 세균과 비교하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하느님을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상위(上位)에 공경하는 것을 가리켜 흠숭(欽崇)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을 우리가 합당한 자세로 공경하고 대하는 태도를 가리켜, 흠숭의 예라는 말을 씁니다.  이 흠숭이라는 말은 다음에 말씀드릴, 상경과 공경의 예와 더불어 우리 사람이 존경과 합당한 예를 표현하는 내용에 속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흠숭한다고 하는 의미는, 세상만물이 하느님으로 인하여 나왔으니, 세상만물의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이 공경하고 높인다고 하는 것도 포함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 예(禮)공경하는 것이 말씀드렸으니, 이제 사람이 그 사정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사는 방법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첫째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114. (문) 제1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이뇨?

   (답) 제1계에 금하시는 것은 천주께만 드릴 공경을 다른 이에게 드림이니라.

115. (문) 천주께만 드릴 공경을 어떻게 다른 이에게 드리게 되느뇨?

   (답) 이는 온갖 미신을 숭상함으로 되느니, 곧 마귀와 사신(邪神)을 섬기거나 마술과 마법을 쓰거나  헛 징험으로 길흉을 믿는 것이니라.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이 뭔가에 의지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알려고 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언제쯤이면 우리 삶에 좀 더 나은 것으로 다가올 것인지 그것을 알아보려고 돈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알아본 것에 대하여 훗날 감사하는 행동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첫 번째 순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주려고해도 인간이 스스로를 귀중하게 볼 줄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우리가 흔히 불안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점을 치거나, 토정비결을 보거나 복채를 주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일에 대하여 알려고 시도하는 것 정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신(迷信:마음이 무엇에 홀려서 망녕된 믿음에 집착함. 종교․과학적 견지에서 망녕되다고 생각되는 신앙)에 홀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명하죠.  사람들은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살지요?  그러나 말로만 현명한 것이 아니라면, 사용해야 할 올바른 방법과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미신의 일반적인 특성은 길(吉)과 복(福) 대신에  흉사(凶事)와 화사(禍事)를 통하여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 닥친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무엇이든 의지할 곳을 찾는 특성을 이용하여 사람을 홀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대우를 받으려하거나, 사람이 그 중요성을 깨닫고 산다면 미신이라든가 사람을 홀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결국에는 인간 세상에 자리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114항에 나오는 하느님께 드릴 공경을 다른 이에게 드림’이라는 말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상숭배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공경의 그 자리에 사람이 만든 것을 대신 올려놓고 우리가 삶에서 잘못 산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본보기로 많이 언급하는 내용은 <탈출기 32장, 구약성경171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숭배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영도자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오른지 약 40일이 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자, 자기들을 이끌고 갈 신을 만들어달라고 아론에게 요구하고, 결국 갖고 있던 금붙이를 이용하여 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현세의 우리가 공경하는 성상들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예를 대신 표현하는 성상들은 우리가 향해야 할 하느님을 세상에 대신 표현하는 도구이지, 우리 눈에 보이는 쇠나 석고상이 하느님의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13항에서 말씀드린, 흠숭지례와는 격이 조금 다른, 다른 공경에 대한 내용이 116항의 내용입니다.  그 첫 번째는 상경지례로서,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뛰어난 역할을 했던 여인,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상경의 예이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긴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로서 우리가 본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모범들을 남기신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공경의 예입니다.  ***<116항을 읽겠습니다>***

116. (문) 성모 마리아나 그 성해(聖骸)를 공경함이 옳으뇨?

   (답) 옳으니, 이는 흠숭지례(欽崇之禮)와는 크게 달라, 성모께는 상경지례(上敬之禮)를 드리고, 성인과 그 성해에게는 공경지례(恭敬之禮)를 드려 그 전달을 구함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도 따라 살 수 있는 모범을 남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일을 하기도 어렵지만, 우리가 웬만한 노력을 들인 것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대로 참된 중요성을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시도하는 일에도 우리가 같은 존경의 마음을 바칠 수도 있지만, 의도적인 일에 대한 존경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강요에 의한 것은 그 효과가 더 빨리 끝나는 법입니다.


마리아의 신앙과 그의 생활을 뛰어난 신앙인의 본보기로 보는 천주교회의 신앙에 대하여, 개신교는 ‘마리아 숭배 종교’라고 천주교를 비방합니다.  한 가지 원칙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깎아 내리고 비방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나 위상(位相)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지속되는 시기는 사람의 일생만큼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주교회에서 마리아를 공경한 역사는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가 우리보다 모자라서 그런 믿음이 지금까지 전해져왔다고 억지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겉모습만 현명해지고 똑똑해졌지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천주교회에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이면서도 하느님의 업적에 동참하신 분이고, 그에 동참하기 위해서 인간의 조건에 닥쳐왔던 여러 가지 곤경을 믿음으로 극복한 분이라고 믿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수세기를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그가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의 모범을 남기신 분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당의 마당에 웬만하면 자리잡은 성모상도 교회에서는 같은 의도로 모시는 것이고, 우리 신앙인들도 그와 같은 모범을 따르자고 다짐하며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교회의 신앙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을 밟는 것입니다.


이 성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대하여 ‘상경지례’라는 말을 쓰고 성인들에 대하여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가리켜서 ‘공경의 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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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계명에 나오는 하느님 공경과는 차원이 약간 다른 사항입니다.  십자가나 마리아를 표현하는 성상과 같은 사물에 대한 공경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117항을 읽습니다.>***

117. (문) 십자가나 성상(聖像)도 공경함이 옳으뇨?

     (답) 옳으니, 이는 그 물건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물건이 표상하는 자를 공경함이니라.


위에서 조금 전에, 우상숭배와 관련된 내용에서 말씀드린 내용의 반복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인의 사진이나 소중한 가족사진을 품고 다니기도 하고, 특별히 선호하는 연애인의 커다란 사진을 액자에 담아서 집에 걸어놓기도 합니다.  같은 의미로, 같은 입장에서 교회에도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길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 종류에는 십자가, 성모상, 성인들의 동상, 벽화, 사진 등의 방법을 이용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이용하여 신앙을 설명합니다만, 눈에 보이는 바로 그것에 힘이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십자가, 성모상, 성인상, 사진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 모습을 통하여 신앙에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취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질 허상(虛像)이기에, 그 모습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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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에 나오는 두 번째의 계명을 이야기하기 전에, 탈출기 20,3-4, 신명기 5,8-9에 나오는 계명 한 가지가 십계명에는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 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는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 반면, 위 성경에는 열 번째로 등장하는 계명이 두 가지로 분리되어 우리가 사용하는 십계명에는 담겨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관한 참조사항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 계명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이름을 부르는 것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름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이란 남이 부르라고 정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함부로 남용해도 좋다는 뜻으로 이름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제 2 계명에 관한 것을 먼저 읽겠습니다.  ***<118-121항을 읽습니다.>***


제 2 절 : 제 2 계명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118. (문) 제2계에 명하는 것은 무엇이뇨?

    (답) 제2계에 명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정성되이 부름과 맹세와 허원(許願)  을 지킴이니라.

119. (문) 맹세는 무엇이뇨/

     (답) 맹세는 전지(全知)하신 하느님을 사실의 증거자로 부름이니라.

120.(문) 허원(許願)은 무엇이뇨?

    (답) 허원은 무슨 선행을 하기로 하느님께 약속하되, 궐(闕)하면 죄 될 줄 알면서 함이니라.

121. (문) 제2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이뇨?

     (답) 제2계에 금하시는 것은 상당한 연고 없는 맹세와 거짓맹세와 설독(褻瀆)과 저주니라.


두 번째 계명은 이름에 관련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십니까?  이름은 한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로 성경에서는 사용합니다.  특정한 대상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하기도 하고, 특정한 대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물음에 응답한다는 것은 항거하지 못할 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구약성서 창세기 3, 9에는 최초로 범죄하고 숨어있는 첫 인류를 찾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사람을 만드신 분이기에 그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그 의미를 알아챈 아담은 대답합니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신약성경 마르코 복음서 5, 9 에는, 게라사 지방을 여행하시던 예수님이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자 묻습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자 그는 “군대라고 합니다. 수효가 많아서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 건너기 전, 하느님은 이집트 백성에게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때에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하신 말씀(탈출기 9,15-16)에 “나는 손을 내뻗어 너와 너의 백성을 흑사병으로 쳐서,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까닭이 있어 너를 살려두었다. 너에게 내 능력을 보이고, 온 세상에 내 이름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려면, 내가 가진 물리적인 힘이 상대방보다 더 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좋을 만큼의 힘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 두 번째 계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이름과 관련된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생겨난 그분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함부로 맹세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계명에서 다루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맹세란 우리 사람들이 하는 다짐을 꼭 실천하겠다는 뜻에서 하는 일입니다만, 그 약속도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 두 번째 계명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면, 그대로 실천하면 되지요.  굳이 맹세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말입니다.  허원에 대한 사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죄가 될 줄을 알고 하는 것을 가리켜 허원이라고 한다고 말합니다.  보통은 신앙생활을 좀 더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맹세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내용(마태오 5,33-37)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제목은 <정직하여라>고 돼 있는 부분입니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쉽사리 대할 수도 있는 맹세와 약속에 대한 의미를 올바로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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