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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2) 이주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7 조회수1,862 추천수0
[김명현 신부의 사회교리]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2) 이주권


지난 호에서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의 존엄성과 기본권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지면 관계로 이주권에 대한 소개를 다 하지 못하였다. 이번호에서 이주권에 대한 소개를 계속하고자 한다.


2. 이주권(이주의 자유)

인간은 창조 때부터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 이주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이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삶의 자리를 옮겨가는 이주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기에 각국은 헌법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한편 세계 인권 선언 13조의 첫 줄에서 모든 국민들이 자국의 지역에서 이주의 자유가 보장됨을, 그리고 둘째 줄에서 자신의 고국을 떠날 수 있는 자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이주권은 자신의 조국을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말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는 국내 거주이전의 자유뿐만 아니라 해외이주와 귀환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거주 이전 자유, 즉 이주권은 무한의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정당한 윤리적 요구와 공공질서, 그리고 사회의 공동선을 침해 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되는 권리이다. 만약 이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과 같은 곳이 되고 만다.

인간이 이주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것과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이주, 그리고 현실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이주가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한 이주는 아브라함의 이주가 대표적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이주는 국가가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특정지역에 이주시키는 것으로 구 소련 스탈린 정권에 의한 고려인 강제이주, 일제에 의해 자행된 한국인 사할린 강제이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이주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땅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자신들의 꿈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주하는 것으로 영국의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로 자연재해, 전쟁, 정치적 억압, 인종분쟁, 기아 등으로 인한 이주가 여기에 속한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후 발생한 보트피플, 새터민, 중앙 아프리카지역의 인종청소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로 인한 난민들의 이주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가지 이주의 유형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이주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또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이주라 할 수 없다. 반면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한 이주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유로운 이주에서는 이주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의 이주와 결혼이주여성은 어떤 범주의 이주에 속할까? 일자리를 찾아서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근로자들과 다문화 가정을 이루는 결혼이주여성은 자신이 처한 궁핍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이주를 한다. 이러한 이주에는 가난과 곤궁을 벗어나기 힘든 사회적 체제가 근로자들의 이주 선택을 강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에서 스스로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체제가 안정되어 있다면 가난한 근로자들이 이주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들의 이주는 사회적 체제에 의한 강압된 선택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사람들이 더욱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수렵채취 생활을 할 때부터 더 많은 식량자원을 얻기 위해, 더 안온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 이주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손으로 경작하기에 잘 어울리고 인간의 필요와 문명화 활동을 위해 여기저기로 이주하면서 생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이주권은 자연권에 합치한다고 가르치며(참조. 비오 12세 새로운 사태 50주년 기념 라디오 메시지), “이주 혹은 이민에서 침해받지 않을 인간의 자연권”임을 선언했다. 나아가 교회는 “다른 지방에서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찾기 위하여 인간은 여러 가지 동기에서 고향을 떠날 권리와 또한 다시 귀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비오 12세, 인간의 비인격화에 대한 성탄 라디오 메시지,19)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사람들이 이주권뿐 아니라 귀향권까지도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주권이 재화의 보편적 목적, 즉 세상이 모든 이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 자연권임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이주의 길을 열어주는 이주권은 인도주의적인 자비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법의 요구이다. 세상 창조주는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국가의 통치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너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즉 모든 사람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하는 땅에 신중하게 고려한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부적절한 동기와 불의한 이유로 가난하고 정직한 외국인의 접근을 막는 데까지 통치권이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Pio, Exsul Familia, n. 79.)

교황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 33항에서 이주권이 이주자의 가족들에게도 인정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지상의 평화’ 12항에서 “모든 사람은 합법적인 이유가 있을 때 정치적으로 다른 공동체에 이주하고 그곳에 정착하는 것이 허락되어야만 한다.” 합법적인 이유를 판단하는 기준은 올바로 이해된 공동선과의 일치 유무에 달려 있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는 1971년 발표한 사회회칙 ‘팔십주년’ 17항에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지나친 민족주의적 자세를 없애고, 그들의 이주권을 인정하며 자기 기능 완성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들의 직업적 승진을 용이하게 하며, 마땅한 주택을 제공하며 자기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입법 조치가 긴급히 요청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주권보호와 함께 이들을 받아들이는 국가가 기본권뿐만 아니라 사회보장권의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이민 사목, 오늘날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한 방법’ 3항에서 이주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교회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자기 나라를 떠날 수 있고 다른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든 인간의 이민의 권리를 인정한다.” 이 권리를 무분별하게 행사할 때 이민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공동선에 해가 될 수도 있기에 각 국가는 이민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민에 대한 규제는 단순히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선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에 기인하여야 한다.

이주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많은 이점을 제공해 준다. 즉 이주를 허락하는 나라와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 사이에 “가능한 최대한도로 진정한 신뢰감이 생기고 커지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말살하려 할 때 서로 유리하게 되고 그것이 또한 합쳐서 인류의 복지와 문화의 진보에 이바지하게 된다.”(어머니와 교사, 45항) 특히 노동자들의 이주권을 보호하는 것은 값싼 노동력을 보유한 국가가 노동력이 부족한 나라에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이주를 허락하는 나라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확보하고,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는 경제활동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들로 인한 인적 교류는 두 나라 사이에 문화의 교류와 인류의 일치와 평화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의 법률로 서로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앞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방적인 결정을 막기 위하여,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조정할 수 있는 국제적 규범이 있어야 한다.”(요한 바오로 2세, 2001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3)

이주권은 인간은 누구나 합당한 삶을 누릴 권리를 지니고 있음에서 비롯되며, 지상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인간은 누구나 인류가족의 구성원이라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각국은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과 일치를 위하여 이주권이 인정·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각국들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사고와 국수주의적 사고에 따라 이주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이주권, 특히 노동자들의 이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법에 합치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온 세상에 선포하고 있다. 교회의 이런 가르침을 펼치는 이유는 바로 세상 복음화의 소명 때문이다.

[월간빛, 2013년 5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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