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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계명 따라 걷기: 셋째 계명 -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23 조회수4,440 추천수0

[십계명 따라 걷기] 셋째 계명 :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살림의 길

 

안식일에 쉬는 사람은 없다 - 마르 3,1-6 묵상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안식일에 쉬는 사람은 없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 있고

목숨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벗의 고통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고

벗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

 

버려진 벗을 부르는 사람이 있고

버려진 벗을 애써 잊는 사람이 있다

 

오그라든 손을 고치는 사람이 있고

오그라든 손을 놔두라는 사람이 있다

 

오그라든 손을 뻗는 사람이 있고

오그라든 손을 뻗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의 실천을 막는 사람이 있다

 

불의에 분노하는 사람이 있고

불의를 일삼는 사람이 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옳은 일을 막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안식일에 쉬는 사람은 없다

 

 

삶, 일함, 쉼

 

일함’과 ‘쉼’ 각각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고, 때때로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일함’과 ‘쉼’이 하나로 어우러져 ‘삶’을 이룹니다.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일함’과 ‘쉼’ 사이를 수 없이 오가는 여정이요, ‘일함’과 ‘쉼’의 조화 안에서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기쁨과 열정 가득한 노동과 평화로운 휴식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고 삶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삶, 일함, 쉼. 문득 몇 가지 물음이 떠오릅니다. ‘일하려고 쉬는가? 아니면 쉬려고 일하는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음들은 어떻습니까. ‘살려고 일하는가? 일하려고 사는가?’ ‘살려고 쉬는가? 쉬려고 사는가?’ 누구든 쉽게 대답할 것입니다. ‘살려고.’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겨를 없이 쉼 없는 노동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일하는 보람을 박탈당한 사람들, 일하지 않고도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신에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빚어낸 세상은 ‘살려고.’라는 대답을 무색하게 만드는 듯합니다.

 

 

일하시고 쉬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을 닮은 사람

 

창세기 1장과 2장은 일하시고 쉬시는 하느님을 역동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닷새 동안 온 세상을 만드시고, 몸소 일하시던 마지막 여섯째 날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당신께서 몸소 이루셨던 창조의 감격스러운 노동을 위임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십니다.

 

하느님의 엿새 동안의 노동과 하루의 휴식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8-11).

 

사람은 엿새 동안 하느님께서 맡기신 창조 사명에 헌신하고 이렛날 하느님처럼 쉼으로써 비로소 ‘하느님 닮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살림’입니다.

 

‘살림’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존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지켜 주고, 하루하루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서 해방하여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파견하신 삶의 의미를 성찰하며 이를 충만히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살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0)라고 하느님께서 명하십니다.

 

따라서 한 랍비는 ‘살림’의 날인 안식일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이야기합니다.

 

“안식일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그 누구도 안식일에는 어떠한 일도 허용되지 않고, 어떠한 명령도 내릴 수 없으며,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예와 부자가 적어도 한 주일에 하루는 동등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해 줍니다. 안식일이 필요한 세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에 창조하신 세상을 관조하셨듯이 우리가 일의 좋은 부분을 관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조안 키티스터, 「십계명 마음의 법」, 성찬성 옮김, 성바오로, 2008, 72쪽).

 

 

다시 살림의 길을 걸어요

 

유다교의 안식일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로 대체됩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통해서, 유다인들의 안식일의 영적인 참뜻을 완성하고,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예고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175항). 여기에서 주일의 의미와 주일에 해야 할 바를 쉽고도 인상 깊게 설명한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너의 주 하느님이다. 나는 너에게 일상을 멈추고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네 생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네 삶에 리듬을 찾기 위함이다.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너의 삶이 일과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눈앞의 이득과 무관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그리하여 네가 하느님을 위한 시간과 믿음의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함이며, 미사 중에, 하느님과 만남 중에 너 자신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함이다”(노트커 볼프 · 마티아스 드로빈스키,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2012, 111쪽).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이제 주일을 거룩하게 지냄으로써,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을 함께 걸어요, ‘안식일의 주인이신 사람의 아들’(루카 6,5 참조)이시며 부활하심으로써 새 창조를 이루신(가톨릭교회 교리서, 2174항 참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 상지종 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신부. 의정부교구 제8지구장 겸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상지종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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