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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99: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16 - 교육자 모세 (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5 조회수1,827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99)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6) - 교육자 모세 (하)

항상 믿음을 회복하고 매사에 감사하라



■ 모세의 신앙교육 교안(敎案), 신명기

약 40년에 걸쳐 영도자의 사명을 다한 모세의 마지막 역할은 교육자였다. 원조 랍비라 할까. 그의 교육 대상은 주로 이집트 탈출에 가담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의 자녀들, 그러니까 탈출자 2세대였다. 그 교육 교안(敎案)이 바로 ‘신명기’다.

신명기는 세 번에 걸친 연설문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역사의 회고 및 교훈 성찰, 십계명 및 계약의 정신 복습, 그리고 미래를 위한 당부 등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 내용들을 바탕에 깔고서 모세는 신명기에서 다음의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미래세대’, 곧 오늘의 우리들도 하느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은 주인공들이라는 것이다. 신명기는 아주 재미있는 시제(時制)를 구사한다.

“주님께서는 이 계약을 우리 조상들과 맺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맺으신 것이다”(신명 5,3).

이 문장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로 통한다. ‘조상’은 과거, ‘오늘’은 현재를 가리키고,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매 시대의 사람들, 결국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이 성경 속 사건들의 주인공이고, 그 당시 주님께서 내리신 말씀의 직접적인 수취인인 것이다. 이런 개념에서 모세는 오늘 우리의 행복을 위한 탁월한 인생공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신명 30,15-16).

둘째, 부모세대들이 불평불만과 잘못으로 인해 겪었던 호된 시련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단 몇 개월이면 족했을 사막 행군 여정이 꼬박 40년 걸렸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을 모세는 주제화했다. 모세가 탈출 2세대에게 전한 교육 요지는 이랬다.

“너희 조상들은 결국 가나안 땅 코앞까지 갔다가 다시 38년 이상을 사막에서 뺑뺑이 돌아야 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거인족에 겁먹고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여 자초한 불행이었다. 너희들은 적을 보지 말고 하느님만을 보아야 한다. 눈 딱 감고 그분의 권능만을 믿어야 한다.”

셋째, 하느님께서 지난날 어떻게 돌보아 주셨는지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라’는 것이다. 믿음은 과거에 받은 은총을 기억함으로써 성장한다. 그러니 야훼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집트 땅에서 선조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셨는지, 그 탈출 행로에서 어떻게 돌보아주시고 먹여주셨는지,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 등등을 하나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얘기다(신명 1,31-33 참조).

모세의 3가지 강조점은 모든 시대에 유효하다. 모세는 탁월한 랍비로서 오늘 우리들에게 빛나는 인생 공식을 전한다.

까마득한 내 후배, 미래 세대여,
따끈따끈한 실감(實感)으로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논하지 말라.
그분은 존재하실 뿐 아니라,
우리 목전에 무소부재(無所不在)로 암중 활약하신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의 뜻이며 의향이며를 궁금히 여기지 말라.
그분께서 ‘구체 중 구체’인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셨으니,
점치는 이들에게 그대들의 운명을 맡기지 말라.
말씀에 충성을 다하면 생명이고 행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고 불행일 뿐이라.

아득한 나의 영적 혈육, 후손들이여,
단장(斷腸)의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부디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왜 나는 믿음의 선조들처럼 못 보고, 못 받고, 못 누리나?
왜 내게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가?
왜 나는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가?
왜 우리에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가
전설 속 뜬구름 잡는 이야기여야 하나?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날 받은 은혜를 몽땅 잊어버렸기 때문에,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백지장만 뎅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다.
잊지 말라! 기억하라!
영적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기억을 되뇌어라.
그리하여 믿음을 회복하고 매사에 감사 올리라.
그리하면 모든 ‘왜’들이 혼비백산 날아가리라.


■ 주입식 N0! 원리 교육

모세가 원조 랍비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계명 및 계약의 법전(율법)이다. 이미 탈출기 20장에 기록된 것을 모세는 신명기 5장에서 다시 언급한다. 왜 그랬을까? 복습 곧 반복 교육을 위해서다. 탈출기의 것은 1세대가 받았던 것이고, 2세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복습하는 것이다. 신앙 교육의 원리는 이처럼 ‘거듭거듭’이다.

그런데, 우리가 탈출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십계명을 조목조목 음미할 때에, 꼭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만약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붙들고 “십계명 한번 외워보세요”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일,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하며 뒤엣것들을 마저 주욱 외울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렇게 배웠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처럼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바로 그 앞의 서문을 외운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신명 5,6).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그리스도인은 다짜고짜로 계명을 외우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을 먼저 외우면서 그분의 과거 업적을 상기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문장이 십계명의 결정적 변수기 때문이다. 자녀 세대에게 야훼의 선하심을 확인시켜주면서 설득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분이 누구지?”

“우리를 종살이에서 이끌어 낸 야훼 하느님!”

“그분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어디로 이끌어 냈지?”

“가나안 땅!”

“옳지,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바로 그 야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10가지 계명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게 너희를 해방시켜주는 것일까, 아니면 속박하는 것일까?”

“해방시켜주는 것!”

“그러니까 좋은 것이야. 알겠니?”

이렇게 먼저 심리학적으로, 교육학적으로 매력 있게 설득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는가.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 금보다, 많은 순금보다 더욱 보배로우며 꿀보다 생청보다 더욱 달다네”(시편 19,8-9.11).

주님의 법을 온전히 맛 들이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예찬을 할 수 있으랴.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4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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