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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를 찾아서: 성품성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7 조회수4,542 추천수0

[진리를 찾아서] 성품성사 (1)

 

 

삶에서

 

사제 서품식에 참석할 때마다 가슴 뭉클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학장신부가 수품 후보자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면 부제들이 “예, 여기 있습니다.”(Adsum.)라고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때다. 성경의 모든 부르심과 응답이 바로 여기서 재현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신학교에서 양성자로 있으면서 공부 못한다고 신학생들을 꾸짖기도 많이 했고, 젊은 혈기와 열정에 분을 삭이지 못해 화를 내고는 후회한 적도 많았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왜 그렇게도 많이 남던지.

 

나 또한 ‘앗숨’ 하며 부르심에 응답하고 사제의 삶을 시작하였지만, 어느 순간 ‘앗숨’이 ‘한숨’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예, 여기 있습니다.’라는 환희와 열정의 응답이 ‘왜 접니까?’라는 불평불만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앗숨’에 담겨 있는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는 적극성이 온갖 핑계와 이유를 들어 외면하거나 포기하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한숨’으로 점점 변해 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신학생 때는 ‘주님, 저를 보내 주소서, 당신이 아파하시는 곳으로.’라고 노래를 곧잘 불렀건만, 요즘은 당신이 아파하시는 곳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눈길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초심을 유지하기란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다가가기

 

성품성사(聖品聖事)에는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의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지난날에는 신품성사(神品聖事)라고 불렀는데, 신품이라는 말이 사제(신부)품만을 뜻하고 다른 품계들은 포함하지 않기에 특별히 사제품을 구분해 써야 할 경우 외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성품성사가 이루어지는 예식을 서품식(敍品式)이라고 부른다. 서품이란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을 주는 예식의 성사적 행위에만 사용되는 용어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단순한 지명이나 위임, 임용 등에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서품식의 핵심적인 행위는 주교의 안수와 축성 기도로, 이는 서품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 표징이다.

 

주교품은 특별히 선발된 신부에게 서품으로 주교직을 수여하는 것이다. 가끔 누가 주교품을 집전하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모든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주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0항 참조). 따라서 주교품도 주교가 집전한다.

 

주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교구 안에서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며,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무를 수행한다. 주교품을 ‘충만한 성품성사’, ‘거룩한 봉사 직무의 정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가톨릭교회 교리서, 1557항 참조) 주교들은 자기가 받은 성령을 통해 신앙의 진정한 참스승, 대사제, 목자가 된다.

 

한국 교회에는 추기경 한 명과 대주교 두 명을 포함하여 모두 스물일곱 명의 주교들이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2017년 8월 30일 현재). 추기경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주교품을 받아야 하며, 추기경은 성품성사를 통해 수여되는 별도의 품계가 아니라 교황이 자유롭게 선발하는 것이다. 추기경들은 특별히 지상의 최고 목자인 교황의 사목 직무를 보좌하는 일을 수행하며, 교황이 공석일 때는 교황 선거를 준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제품을 받은 신부들은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에게서 파견되어 자신이 맡은 소임지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을 사목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사제들은 오직 주교에게 속하고 주교와 일치를 이룰 때에 비로소 그들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사제품을 받으려면 각 교구 성소국이 운영하는 사제 지망자와 성품성사 후보자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세례받은 뒤 신앙생활이 적어도 3년은 넘어야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101조 참조). 또한 신학교 과정 안에서 독서를 봉독할 자격을 얻는 독서직, 제단에 봉사할 수 있는 시종직, 그리고 성품성사인 부제품을 받아야 한다.

 

부제품은 부제의 명칭인 ‘diaconus’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봉사의 품계’로, 오직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 사제품은 주교 다음에 모든 사제가 후보자들에게 안수하여 사제단의 일치를 드러내지만, 부제품은 오직 주교만 부제에게 안수하여 그가 특별히 주교에게 속해 있음을 강조한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부제품이 사제직을 준비하는 품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적인 부제직뿐만이 아니라 사제품을 받지 않는 지속적인 부제직도 있는데, 이를 ‘종신 부제’라고 부른다.

 

기혼이나 미혼 남자들에게 수여되는 종신 부제직은 본당 전례에 봉사하거나 주교나 신부를 대신하여 교회 공동체를 지도하고, 사회사업이나 자선 활동을 통해 봉사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천주교회는 이 종신 부제직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성품성사를 받는 사제는 교구 사제와 수도회 사제로 나뉜다. 교구 사제는 교구 성직자로서 자기 주교 아래에서 소속 교구에 봉사한다. 또한 교구 사제단을 이루어 주교와 함께 교구 전체의 영적 선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수도회 사제는 수도회에 입회하고 사제로 양성되어 사제품을 받거나 또는 사제품을 받은 뒤에 입회하여 수도 서약을 한 수도자이다. 교구 사제이든 수도회 사제이든 모두 주교의 협력자이며 자신의 소명과 은총에 따라 온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교회헌장, 28항 참조).

 

 

살펴보기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발표한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은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사제 양성의 총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다. 이 문헌은 참된 목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제의 영성 생활을 활기차게 해 주고 이끌어 주는 힘, 즉 내적인 원칙은 ‘목자로서의 사랑’입니다. … 이러한 목자로서의 사랑에서 필수적인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 즉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좇아 자신을 교회에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 바로 목자로서의 사랑 때문에 사제직 수행이 ‘사랑의 직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23항).

 

직무 사제직은 신자들에게 봉사하고자 받은 거룩한 권한이지만, 그 바탕에는 목자로서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성품성사는 가르치고, 예배드리며,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하는 성사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덕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성덕이란 모든 영혼을 남김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을 대신해서, 또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결심하기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공부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수업 중의 하나가 ‘성소 사목’(Pastorale Vocazionale)이라는 과목이다. ‘아마데오첸치니’라는 카노시안회의 수사 신부님이 가르치셨는데, 처음에는 명칭만 보고 사제와 수도자의 성소자를 많이 모으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과목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과목의 핵심 내용은 세상의 모든 사목은 ‘부르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세상에 거룩하지 않은 부르심이 어디에 있냐며, 우리 신앙의 출발점은 부르심과 응답의 도식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종교’이다.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바로 ‘신앙’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잘나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르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혼인 성소든 사제성소든, 그리스도교의 모든 부르심의 출발점은 사랑이다. 내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실천하는 것과도 같다는 점을 꼭 명심하자.

 

* 박종주 베드로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으로 일하며 차별화된 가톨릭 평생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가르쳤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박종주 베드로]

 

 

[진리를 찾아서] 성품성사 (2)

 

 

삶에서

얼마 전 제주에서 거행된 주교 서품식에 참석했다. 신학교에서 동고동락했던 심성 고운 동창 신부님이 주교로 임명되셨기 때문이다. 잘 아는 분이 주교품을 받는다는 사실에 마음 뿌듯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새 주교님이 평생 져야 할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울지 안쓰럽기도 했다.

지역의 특성상 밤에 야외에서 서품식을 거행하였는데, ‘울보 주교님’이라는 주교회의 의장 주교님의 인사말 때문인지 미사 중 강한 빗줄기가 제의를 흠뻑 적실 정도로 많이 쏟아졌다. 서품 미사에서 교구장 주교님의 강론이 특별히 감동적이었다. 30년 전 당신의 주교품을 준비하시면서 사무엘기 하권 7장의 말씀을 묵상하셨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은 향백나무 궁에 사는 자신과 비교하면 하느님의 궤가 천막에 머무르는 것이 가슴 아파, 새로 궁을 지어 계약 궤를 모시려고 한다. 하지만 그날 밤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 내가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2사무 7,6-7)

교구장님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집을 지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것이 마치 다윗의 행동처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하신다면서, 새 주교님도 자신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찾으시기를 당부하셨다.

 

 

다가가기

우리는 흔히 사제직을 주교, 신부, 부제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신자들은 각자의 소명에 따라,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세례로 받은 사제직을 수행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46항 참조).

교회는 이를 ‘보편 사제직’이라고 부른다. 신자들이 받은 ‘보편 사제직’은 세례의 은총과 믿음·희망·사랑의 삶, 성령에 따른 삶의 과정에서 실현된다. 주교와 신부, 곧 사제들의 ‘직무 사제직’은 보편 사제직을 위해 봉사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례 은총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먼저 사제들은 거룩하게 하는 직무로 교회에 봉사한다. 그들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한다. 사제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됨으로써(1베드 5,3 참조) 교회를 거룩하게 한다.

또 사제들은 가르치는 직무로 교회에 봉사한다. 사제의 첫째 임무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들으며, 또한 그 말씀을 스스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교황 또는 교황과 더불어 주교단이 교회의 권한으로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거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제시할 때에는 그러한 결정에 신자들은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91항 참조). 가톨릭 신자들은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나 ‘성모님의 승천’ 교리와 같이, 성경과 신경에는 없지만 교황이 사도좌에서 선포한 교리들을 믿을 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교황과 주교단이 비록 결정적인 의사 표시 없이 일반적인 교도권의 행사를 통하여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한 계시를 더 잘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전할 때에도 신자들은 ‘마음의 종교적 순종’(교회 헌장, 25항 참조)으로 이를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교황님들이 발표하신 회칙이나 권고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사제들은 다스리는 직무로 교회에 봉사한다. ‘착한 목자’는 사목직의 모범과 전형이다. 사제들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착한 목자로서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친자녀처럼 사랑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제들이 직무 사제직으로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한다면, 평신도들은 보편 사제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먼저 평신도들은 어디에서나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배자로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직을 수행한다. 그들은 고정적으로 독서직과 시종직을 맡을 수 있으며,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말씀의 직무를 수행하거나 전례 기도를 맡을 수 있다. 또한 세례를 수여하거나 성체도 분배할 수 있다.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한다. 그들은 교리 교육과 거룩한 학문 교육, 사회 홍보 매체 등을 통해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 전하는 그리스도의 선포를 실현한다.

마지막으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왕직에도 참여한다. 교구나 본당의 여러 기구에 참여하여,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받은 소명을 실천한다.

이처럼 사제들의 ‘직무 사제직’과 평신도의 ‘보편 사제직’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한다.

 

 

살펴보기

가톨릭교회에서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자는 혼인을 하지 않는다. 교회의 오랜 전통은 주님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데에 자유롭게 헌신하며, 하느님 백성에게 좀 더 수월하게 봉사하고자 사제 독신제를 명시하였다.

하지만 사제의 독신 생활을 마치 성품성사를 받으려고 “주님께 바쳐야만 하는 어떤 공물”(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59항)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신은 어떤 대가도, 혼인의 도피도 아니다.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하는 ‘선물’이다.

독신 생활은 교회가 교회 자신을 위하여 또 세상을 위하여 좋은 것이라 확신해 받아들였으며, 계속 보존하기를 열망하는 선물인 것이다. 성경 말씀처럼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는 하느님의 고귀한 은총이다(마태 19,11 참조).

 

 

결심하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들이 맡은 여러 역할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교회는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현저히 드러나는 위험 가운데에는 이른바 ‘그릇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사제들의 임무와 평신도들의 임무를 혼동하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사제가 수행해야 하는 성사 집전이나 말씀 선포의 특별한 방식들은 평신도가 할 수 없다. ‘그릇된 민주주의’는 그리스도의 권위와 주요한 은총을 부인하거나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는 심각한 유혹이다. 직무 사제직과 보편 사제직의 구분은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에 일치와 조화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다시 얼마 전 참석했던 주교 서품식으로 돌아가 본다. 영성체 후 기도 다음 축하식 중에 대통령님의 축사를 낭독할 때였다. 축사 내용은 새 주교님이 주교품을 받고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을 잘 수행해 주시기를 당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사제직, ‘예언직’, 왕직이라고 읽는 것이었다. 직업병(?)인지 그 말이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우리 신자들도 자주 실수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언자직’을 ‘예언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자’와 ‘예언’은 다르다. ‘예언자’는 ‘말씀 선포자’를 의미하지만,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낭독자가 잘못 읽었는지는 모르나, 혹시 다음에 대통령님을 만나면 ‘예언직’이 아니라 ‘예언자직’이라 하셔야 된다고 살짝 귀띔해 주고 싶다.

* 박종주 베드로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으로 일하며 차별화된 가톨릭 평생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가르쳤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박종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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