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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리문답 해설 (15): 덕행과 본죄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05 조회수4,645 추천수0

  다음은 지킬 계명의 세 번째 부분으로 덕행[德:마음이 바르고 人道에 합당한 일]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덕행으로 구별하고 그렇게 하도록 명(命)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그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멀리하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라도 남겨놓는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교회에서 이렇게 정한 의미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 당연한 길을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옳지 않은 사람으로 봐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저 혼자만 잘난척한다고 무시하는 모습을 가끔씩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시선이 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 올바른 일로 있어야 할 것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덕행입니다.

 

  덕이 있는 행동은 교회에서 두 가지로 구별합니다.  이 세상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바라시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향주덕(向主德)과 사람들이 그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그 삶의 정신을 밝히는 윤리덕(倫理德)이 그것입니다.      

 

제 3 장 : 덕행

358-162. 덕행은 무엇입니까? " <답> 덕행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한결같은 마음가짐이니, 결코 일시적인 태도가 아니고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각오와 노력입니다.

358-163. 덕행은 몇 가지가 있습니까? : <답> 덕행은 두 가지가 있으니, 향주덕(向主德)과 윤리덕(倫理德)입니다.

 

  덕이라는 것은 눈속임이 아닙니다. 한자가 만들어질 때, 덕이라는 말의 의도하는 뜻이 따로 있겠지만, 이 덕은 내 앞에 있는 한 사람,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 작은 공동체의 모습만을 살짝 눈속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실체를 알게되고 그 거짓이 드러난다면 결국에는 애초에 하지 않은 일보다도 못한 결과를 맺는 것이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향하는 덕이 향주덕은 다시 세 개로 구별합니다. 한자의 표현을 써서 신(信), 망(望), 애(愛)로 말합니다.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세 가지를 가리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나 있겠습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교회에서 말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제 1 절 : 향 주 덕 (向主德)

358-164. 향주덕은 무엇입니까? : <답> 향주덕은 사람을 직접 천주께로 향하게 하는 덕입니다.

358-165. 향주덕은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까? : <답> 향주덕의 분류는 세가지로 볼 수 있으니, 신덕, 망덕, 애덕입니다.

 

  첫째편인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사이에도 믿음은 필요합니다. 우정도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상살이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물건거래나 돈 거래도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사이에 사용하는 믿음과 여기서 말하는 믿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구별하면서 설명하기 힘든 것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만을 가지고서는 하느님의 세계에 대한 것을 모두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때 사용가능한 인간의 언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면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358-166. 신덕은 무엇입니까? : <답> 신덕은 천주께서 내려주신 초성(超性)한 덕행이니, 천주께서 계시하시어 천주교회에 맡기신 모든 진리를 천주의 진실하심을 인하여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덕, 두 번째는 희망에 대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 용어를 가끔씩 ’소망’이라는 말과 혼용합니다. 그러나 전 그 의미를 다르게 씁니다.  희망은 하느님의 영역에 대한 것입니다. 저도 하느님을 뵙지는 못했으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능력은 없습니다만, 우리의 감각으로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조금은 신비한 모습을 띤 것이라고 구별합니다.  그 의미에 비해서 소망은 인간적인 것이죠. 희망처럼 얻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획득할 수 있고, 가 닿을 수 있는 것으로 희망보다는 등급이 낮은 것으로 구별합니다.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가 바라는 대로 자신의 삶을 바꾸어 갑니다. 이것이 희망이고, 이것이 우리 삶에 훌륭한 영향을 남길 때, 그래서 우리가 거기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받을 때 그것은 희망의 역할입니다.

 

358-167. 망덕은 무엇입니까? : <답> 망덕은 천주께서 내려주신 초성한 덕행으로서, 예수의 공로를 보사 허락하신 천당영복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 복락을 얻기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천주의 성실하심을 인하여 또 자비하심을 인하여 굳세게 바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세상살이에서도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랑 역시도 인간의 세계에서 통하는 것과 하느님의 세계에서 통하는 것을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사랑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구별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반대급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받았기에 주거나, 훗날 받을 것을 막연하게나마 기대하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358-168. 애덕은 무엇입니까? : <답> 애덕은 천주께서 내려주신 초성덕행으로서 만선(萬善)미호(美好)하신 천주를 그 지선하심을 인하여 만유위에 사랑하고 또 천주를 위하여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을 교리에서도 말씀드린 내용과 일맥상통하기는 합니다만, 이 세상의 만물을 만드시고, 그 관리를 인간에게 맡기신 하느님께서, 인간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자 구원자를 보내어 구원의 손길을 폅니다.  신학적인 설명입니다만,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리를 고수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던지신 것은 하느님이 보여주신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은 인간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169항의 내용은 언제, 우리가 하느님을 향하여 이런 덕을 특별히 청할 것인가의 내용입니다.  교리에서는 특별히 유혹 때와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지극히 인간의 욕심을 담고 있는 행동입니다. 저도 말이 앞서기는 합니다만, 이 덕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때만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필요할 때는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358-169. 향주삼덕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답> 향주삼덕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 삼덕을 자주 발하며 특별히 유혹을 당할 때와 더욱 임종 때에 발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사람이 행동하는 가운데 드러나야 할, 인간을 향한 덕목을 다룰 차례입니다. 그 내용은 윤리덕과 복음을 우리 생활에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복음삼덕으로 구별합니다. 몇 차례 구별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는 합니다만, 이 구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구별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체적인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제 2 절 : 윤리[倫理 :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덕

358-170. 윤리덕은 무엇입니까? : <답> 윤리덕은 직접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른 도리에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358-171. 윤리덕 중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윤리덕 중에 중요한 것은 4추덕이니, 곧 지덕, 의덕, 용덕, 절덕입니다. [지(智) 의(義) 용(勇) 절(節)]

 

  지혜와 정의, 용기와 절제의 덕은 예로부터 강조돼 왔던 것입니다. 이 말과 혼동되어 우리를 헛갈리게 하는 것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네 가지 덕은 상황에 따라서 그 정신이 변하는 것은 아니고, 적용방법만 달리하여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 복음삼덕에 대한 것입니다.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었던 예수님의 길을 직접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청빈은 부유하게 살지 않음과 정결은 깨끗하게 사는 것, 순명은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지 않는 것에 해당합니다.

 

358-172. 복음삼덕은 무엇입니까? : <답> 복음 삼덕은 청빈 정결, 순명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의한 것이며, 수도자들이 허원을 하여 닦고 지키는 덕입니다. [청빈(淸貧),  정결(貞潔), 순명(順命)]

 

  이제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죄에 대한 묘사입니다. 죄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오고 싶어한다고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녀석인 것은 분명합니다.  죄에 대한 내용을 지켜야 할 계명에서 다루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행동하는데 있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서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뭔가를 ’하지 말라’고 말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왜 주지 않는가?’하며 묻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되지 않을 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을 넘는 것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 죄가 어떻게 우리 인류에게 생기고 사람의 역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이 올바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 죄라는 허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죄악의 모습도 사람이 갖는 욕심과 맞물려 있습니다.  형제로 나오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시기(猜忌)에 따른 욕심이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개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심에 대한 표현이 죄악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본보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면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하여 항의했던 일, 다윗이 한 병사[=우리야]의 아내에 대한 생각도 그랬던 것들입니다.

 

  제 4 장에서 다루는 ’본죄(本罪)’는 우리가 범한 죄입니다.  이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교회에서는 ’원죄(原罪)’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잘못된 성향, 자신만을 알고, 타인에 대한 중요성을 거부하려는 경향, 그래서 애초에 똑같은 중요성으로 태어난 인류를 구별하여 대우하려는 못된 경향이 원죄라면 육체를 가진 인간존재로서 자신의 의지를 갖고 행하는 죄를 가리켜 본죄라고 합니다.

 

제 4 장 : 본죄

358-173. 본죄는 무엇입니까? : <답> 본죄는 계명을 알고도 자유로 범하는 것입니다.

358-174. 본죄는 몇가지 모양으로 범하게 됩니까? : <답> 본죄는 여러 가지 말과 모양으로 범할 수 있는데, 특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천주와 타인과 자신을 거스려 범하게 됩니다.

 

  사람은 대소를 구별하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욕심이 발동하면 큰 것은 내가 갖고 작은 것은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이런 성향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죄도 대·소를 구별합니다.  여기 죄에 대해서 적용하는 말, 대죄와 소죄는 사람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산술적인 개념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358-175. 본죄는 몇가지 있습니까? : <답> 본죄는 대죄와 소죄 두 가지 있습니다.

358-176. 대죄(大罪)는 무엇입니까? : <답> 대죄는 계명이 중한 줄 밝히 알고도 온전한 자유로 범하는 것입니다.

358-177. 대죄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 <답> 대죄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는 은총과 모든 공로를 다 잃고, 지옥의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속하여 자의나 타의나 대죄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고 지옥의 벌을 받게 되는 것이라 가르치고, 그런 요소에 다가갈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소죄의 역할입니다.  길에 비유하면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는데, 방해되어 돌아가게 하거나 지체하게 만드는 큰돌을 대죄라고 한다면, 그런 역할까지는 아니지만 가는 길을 불편하게 하는 자갈돌들은 소죄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358-178. 소죄(小罪)는 무엇입니까? : <답> 소죄는 계명이 중대치 않은 줄로 알고 자유로 범하는 것입니다.

358-179. 소죄(小罪)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 <답> 소죄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는 천주를 사랑하는 열정이 점점 줄어들어 차차 대죄에까지 빠지게 되기 쉽고 또한 현세의 고통과 후세의 연옥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의 근원을 찾는 것은 신비한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위에서는 사람이 갖는 욕심이 죄를 있게 하는 원인이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그런 죄악의 근원을 말합니다.

358-180. 모든 죄악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 <답> 모든 죄악의 근원은 대개 일곱 가지를 말할 수 있으니, 교오(교만)과 간린(인색)과 미색과 분노와 탐도(탐욕)과 질투와 나태(게으름)입니다.

 

  일곱 가지 요소를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을 가리켜 ’칠죄종(七罪宗)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죄종(罪宗)이라는 개념은 자체로 죄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죄의 근원도 되고, 동시에 다른 죄를 유발하는 원인도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 칠죄종 **

교오(驕傲) : 교만[젠체하고 뽐내며 방자함]하고 오만[잘난체하여 방자함]하여 남을 업신여김  :

            PROUD(교만)

간린( 吝) : 하는 짓이 소심하고 인색[재물을 체면없이 다랍게(=오관에 거스릴 정도로 매우 더럽다) 여김]함

            STINGINESS(인색)

미색(迷色) ; 성욕의 노예가 되어 사물을 올바로 보지 못함

분노(忿怒) : 분에 겨워 몹시 화를 냄

            RESENTMENT(분노)

탐도(貪 ) : 음식이나 재물을 탐하여 지나칠 정도로 먹고 마심

            GLUTTONY(탐식)

질투(嫉妬) : 우월한 사람을 시기함

            JEALOUSY(질투심). ENVY(질투)

나태(懶怠) :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함

            to be indolent, lazy

 

  사람은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욕심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흐른다면, 그 다음부터는 정신차리기 힘들죠.  이 욕심을 제대로 다스린다면, 그것만큼 건설적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수 많은 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욕심 많은 분이라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가지신 그 욕심은 인간이 구원의 길로 가기를 바라는 욕심이기에, 인간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분류에 넣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욕심 많은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수많은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교회를 통하여 표현하는 신앙인의 길입니다.  이 신앙의 길, 신앙인의 길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것이 181항의 내용입니다. 이 신앙의 길을 방해하는 것이 위험을 주는 요소들입니다.  예전에는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세 요소를 삼구라고 불렀습니다.

358-181. 우리의 신앙생활에 위험을 주는 것은 대개 무엇입니까?: <답> 우리의 신앙생활에 위험을 주는 것은 죄악으로 유인하는 세속적인 경향과 자신의 과도한 육육과 각가지 형태로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길을 가려면, 이 세 가지 욕망에 대한 것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것이 커다란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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