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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어느 캐럴에 담긴 뜻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06 조회수88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어느 캐럴에 담긴 뜻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 성탄 전야인 12월 24일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 20일 가까운 기간을 성탄 시기로 지내며 경축한다. 그 사이에 주님 공현 대축일(1월 6일, 우리나라에서는 1월 2-8일 사이의 일요일)을 지내고, 그다음 주일(단,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낸 다음 연중시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양에서 널리 불리는 성탄 캐럴이 있다. ‘12일의 성탄절’(The Twelve Days of Christmas)이라는,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 6일까지의 12일을 소재로 한 노래다.

 

 

 

“성탄절 첫째 날

내 사랑이 내게 선물을 주었어요.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성탄절 둘째 날

내 사랑이 내게 선물을 주었어요.

멧비둘기 2마리와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성탄절 셋째 날

내 사랑이 내게 선물을 주었어요,

프랑스 암탉 3마리와

멧비둘기 2마리와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

 

노랫말은 이런 식으로 열두째 날까지 이어진다. ‘내 사랑’은 넷째 날에는 지저귀는 새 4마리를, 다섯째 날에는 금반지 5개를, 여섯째 날에는 산란 중인 거위 6마리를, 일곱째 날에는 헤엄치는 백조 7마리를, 여덟째 날에는 우유를 짜는 하녀 8명을, 아홉째 날에는 춤을 추는 무희 9명을, 열째 날에는 도약하는 영주(領主) 10명을, 열한째 날에는 나팔을 부는 나팔수 11명을, 열두째 날에는 북을 치는 고수 12명을 선물한다. 그리고 ‘나’는 성탄 시기 12일 동안 날마다 전날 받은 선물에다 새로운 선물 한 가지씩을 더해서 받는다.

 

 

영국에서 가톨릭이 탄압받던 시기 자녀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전하던 방법

 

이 캐럴의 유래와 버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전해 오는데, 그중의 하나는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역사를 말해 준다. 이를테면 이 캐럴은 영국에서 가톨릭교회가 탄압받던 시기에 가톨릭 신자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해 주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가톨릭교회는 16세기 중엽부터 1829년 영국 의회가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승인할 때까지 300년 가까이 개인으로나 공적으로 가톨릭의 신앙 행위나 의식을 표현하거나 거행할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는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자체가 범죄 행위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자녀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전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한 방법이 박해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노랫말을 암호화하여 그 안에 가톨릭의 주요 교리를 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사랑’이 ‘나’에게 성탄 시기 12일 동안 날마다 하나씩 12가지의 선물을 주었다는 내용의 캐럴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12일에 걸쳐 날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선물을 추가로 주는 이, 곧 ‘내 사랑’은 세상과 인간을 지으시고 죄로 배신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하기로 마음먹으신 ‘성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나’는 착하고 신실했던 영국의 가톨릭 신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노래에 담긴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는 무엇일까?

 

 

 

1마리의 자고새는 성탄절 첫째 날에 태어나신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 알을 많이 품는다고, 심지어는 다른 새의 알까지 훔쳐다 품기까지 한다고 알려진 자고새는 인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2마리의 멧비둘기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의 근간이 되는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두 원천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가리킨다. 이 선물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이며 인류와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알 수 있다.

3마리의 암탉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본이 되는 필수적인 덕목, 곧 믿음, 희망, 사랑을 가리킨다. 향주삼덕(向主三德) 또는 대신덕(對神德)이라고 불리는 이 3가지 덕목은 특별히 코린토 1서 13장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우리를 이끈다.

 

4마리의 지저귀는 새는 4권의 복음서와 각 복음서를 기록한 복음사가들, 곧 성 마태오, 성 마르코, 성 루카, 성 요한을 가리킨다. 4명의 복음사가가 각기 글로 기록한 복음서들에는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그분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대해 오롯이 알려 준다.

 

5개의 금반지는 계시의 두 원천 중 하나인 구약성경, 특별히 토라 또는 모세오경이라고 불리는 구약성경의 첫 다섯 책을 가리킨다.

 

6마리의 산란 중인 거위는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 곧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지으신 이야기에 나오는 창조의 6일을 가리킨다.

 

 

12절까지 이어지는 노랫말을 부르며 주요 교리 새겨

 

7마리의 헤엄치는 백조는 성령 하느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일곱 가지 은혜, 곧 지혜, 깨달음, 지식, 의견, 굳셈, 효경, 경외의 은사를 가리키거나 이러한 은사들을 전달해 주는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를 가리킨다.

 

 

 

8명의 우유를 짜는 하녀는 신분의 고하 귀천과는 상관없이 마음이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 온유한 이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 자비로운 이들, 마음이 깨끗한 이들, 평화를 이루는 이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이 받아 누리게 될 참 행복을 가리킨다.

 

9명의 춤추는 무희는 성령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아홉 가지 열매들, 곧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를 가리킨다.

 

10명의 도약하는 영주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 곧 그리스도인이라면 지켜야 할 기본 율법을 집약한 십계명을 가리킨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유럽에서는 영주가 자신의 영지에서 법에 따라 판결하는 재판관이자 법을 집행하는 신분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율법과 연결되어 이 캐럴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11명의 나팔을 부는 나팔수들은 예수님께서 애초에 12명의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그중 하나인 유다가 그분을 배신하고 떠났음에도 끝까지 변함없이 그분께 충실했던 열한 제자, 곧 사도들을 가리킨다.

 

12명의 북을 치는 고수들은 사도신경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의 12가지 교의(믿을 교리)를 가리킨다. 12가지 믿을 교리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서(창조주 하느님), 성자 하느님에 대해서(강생하심, 수난하시고 돌아가심, 무덤에 묻히시고 저승에 가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다시 오실 것임), 성령에 대해서(성화하시는 하느님), 교회에 대해서(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 믿는 이들에 대해서(죄를 용서받을 것임, 다시 살아날 것임, 영원히 살 것임)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들이다.

 

이런 식으로 저 옛날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알아야 할 가톨릭 신앙의 요체를 담은 노래를 만들었고, 자녀들은 12절까지 이어지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를 머리와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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