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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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0년 5월 29일 금요일

[(백) 성 바오로 6세 교황]

오늘 전례

바오로 6세 교황은 1897년 9월 26일 이탈리아 브레시아 근처 콘체시오 마을에서 태어났다. 1920년 5월 29일 사제품을 받고 교황청 국무원에서 일하였으며, 1954년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963년 6월 21일 교황으로 선출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교회 생활의 쇄신, 특히 전례 개혁,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와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를 증진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78년 8월 6일 선종하였고, 2018년 10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입당송

주님은 손수 그를 대사제로 뽑으시고, 당신의 곳간을 여시어 온갖 복을 베푸셨네. 알렐루야.

<또는>

집회 50,1 44,16.22 참조
보라, 대사제, 주님은 맹세하신 대로 당신 백성 가운데 그를 높이셨네. 사는 동안 그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성자의 복음을 열렬히 전한 사도인 복된 바오로 교황에게
하느님의 교회를 다스리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뛰어난 가르침에 따라
온 세상에 사랑의 문화를 널리 펼치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페스투스 총독은 아그리파스 임금에게 바오로가 상소하였다고 이야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을 물으시고는 당신 양들을 돌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ㄴ-21

그 무렵 13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14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16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7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8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21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11-12.19와 20ㄱㄴㄹ(◎ 19ㄱ)
◎ 주님은 당신 어좌를 하늘에 세우셨네.
또는
◎ 알렐루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 주님은 당신 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당신 왕권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 ◎

복음 환호송

요한 14,26
◎ 알렐루야.
○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복된 바오로를 기리며 제사를 바치오니
이 제사가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저희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또는>

<주님 승천 감사송 1 : 승천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광의 임금님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로서
(오늘) 천사들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 세상의 심판자,
하늘과 땅의 주님이 되셨나이다.
저희 머리요 으뜸으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0,11 참조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복된 바오로가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으니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 마음에도 그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의 마지막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장식됩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고쳐 보면, ‘너 나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느냐?’ 정도가 될 것입니다. 사랑은 함께 머무르는 것입니다. 세 번의 배반을 지나서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원하지 않는 박해의 길로 떠날 것입니다. 박해와 죽음의 자리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랑은 실은 자기 욕망의 투사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다름과 갈등 속에서 꿋꿋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늘 힘겹고 슬픈 일인 동시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더욱 풍요롭고 거룩하게 여기는 경외심의 실천입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연거푸 물으시는 예수님 때문에 베드로는 슬픔마저 느낍니다. ‘간절히 사랑하는데도 예수님께서 알아주시지 않는구나.’ 싶어 베드로는 슬퍼지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 느끼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우리의 이웃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슬픔 너머에 있는 당신의 양들을 베드로에게 소개하십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의 질문은 ‘너는 나의 양들과 함께 지내겠느냐?’의 질문으로 다시 고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구체화되고 드러납니다. 이웃과 반목하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고, 이웃과 사랑하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르는 사랑의 주인공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