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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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2일 화요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하느님, 날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알렐루야.
찬미가
I. 독서기도를 밤이나 새벽에 드리는 경우 :

성자는 성부함께 빛을내시니
빛들의 샘이시요 태양이시라
찬미의 노래불러 어둠깨오니
청하는 우리에게 도움주소서

마음의 어두움을 흩어주시고
악마의 함정일랑 막아주소서
해로운 게으름에 빠지지않게
우리의 새벽잠을 걷어주소서

주님께 우리들이 믿음두오니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시옵고
아침에 노래불러 찬미하오니
청하는 모두에게 도움주소서

사랑의 임금이신 독생성자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드리세
위로자 성령께도 언제나항상
세세에 무궁토록 영광드리세. 아멘.

II. 독서기도를 낮에 드리는 경우 :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시여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니
낮에는 일하도록 마련하시고
밤에는 편히쉬게 안배하셨네

우리는 아침저녁 가리지않고
주님께 밤낮으로 노래하오니
당신의 영광속에 받아들이사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주소서

보소서 우리모두 무릎을꿇고
열심히 우리주님 흠숭하오니
우리의 서원기도 받아들이사
천사들 찬미가에 합쳐주소서

사랑의 아버지와 독생성자와
위로자 성령께서 삼위일체로
영원히 무궁토록 살아계시며
만물을 사랑으로 다스리소서. 아멘.
시편기도
후렴1주께서는 없는 이들을 정의로 판단하시나이다.
시편 9하(10)
감사의 기도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가 6,20).

I

1 주님 어찌하여 멀리 계시나이까 *
하필이면 이 곤경에 숨으시나이까.

2 무도한 자 그 등쌀에 서러운 이 들볶이고 *
꾸며낸 그 흉계에 빠져 들지 않나이까.

3 삿된 자 자랑스러이 제 욕심을 부리며 *
다라운 자 흥청대며 주를 깔보나이다.

4 속이 잔뜩 부푼 무도한 자는 +
“벌이란 없다 신은 없다” 하고 있으니 *
이것이 그의 생각 전부오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나 번화로우나 +
아득하신 심판을 알 리 없삽고 *
상대자를 모두 다 비웃나이다.

6 제 속으로 그는 말하나이다. *
“나는 움찔 않으리라 영영 불행이 없으리라.”

7 악담과 간계와 사기가 그 입에 그득하고 *
혀 밑에 숨기는 것 괴롭힘과 거짓이오이다.

8 마을 으슥한 곳에 숨어 앉아서 +
죄 없는 사람을 몰래 죽여 버리고 *
가난한 이를 눈으로 그는 살피나이다.

9 굴속의 사자처럼 으늑한 데서 노려보며 +
가엾은 이 움키려 노리다가는 *
가엾은 이를 낚구어서 그물로 채치나이다.

10 무도한 자 구푸리어 깔고 있는 바람에 *
없는 사람 그 힘에 눌려 쓰러지나이다.

11 무도한 자 제 속말로 “신은 잊었다 *
외면한 채 다시는 안 본다” 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1주께서는 없는 이들을 정의로 판단하시나이다.
후렴2주님은 서러움과 억울함을 보고 계시나이다.
시편 9하(10)
감사의 기도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가 6,20).

II

12 일어나소서 주 하느님 당신 손을 쳐드옵소서 *
행여 없는 이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무엄한 자 제 어찌 주님을 얕이 보며 *
“벌하시지 않는다” 속말 하나이까.

14 그러나 주님은 보시나이다 +
서러움과 억울함을 보고 계시니 *
손수 갚아 주시고자 하심이외다.

가난한 자 당신께 의지하오니 *
고아를 돕시는 분 주님이외다.

15 꺾으소서 죄인과 악당의 팔을 *
그 악을 갚으시면 부지 못하오리다.

16 주는 영원 무궁토록 임금이시니 *
이방인들이 당신 땅에서 죽고 없나이다.

17 주님은 가엾은 이들 소원을 들으시고 귀기울이시어 *
그들 마음 굳세게 해주시와,

18 억눌린 자 고아들은 권리 찾게 하시고 *
을러메는 인간은 다시 없게 하셨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2주님은 서러움과 억울함을 보고 계시나이다.
후렴3주님의 말씀이야 진실된 말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닦인 순은이오이다.
시편 11(12)
거만한 원수들을 거슬러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성부께서는 황송하게도 당신 아들을 보내 주셨도다(성 아우구스티노).
2 경건한 자 끊어져 없사오니 주여 구하여 주소서 *
아담의 후예 중에 진실한 사람이 없나이다.

3 저마다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
간사한 입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

4 아첨하는 모든 입술 *
제 자랑하는 모든 혀를 주여 끊어 주소서.

5 “혀는 우리의 힘 우리 위한 입술이거늘 +
누가 우리를 지배하랴” *
이같이 말하는 그들이오이다.

6 “없는 이 구박당하고 가엾은 이 서러워 하니 *
내 당장 일어서리라.

구원을 갈망하는 자를 살려내리라” *
주님의 말씀이 이러하시니,

7 주님의 말씀이야 진실된 말씀 *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닦인 순은이오이다.

8 주님 당신이 우리를 지켜 주시고 *
언제나 이 족속에게서 구하여 주시오리다.

인간에 천한 것이 우쭐거릴 때이면 *
악한 무리 그 둘레에 싸다니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주님의 말씀이야 진실된 말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닦인 순은이오이다.
주께서는 온유한 자 의를 따라 걷게 하시고,
겸손한 자 당신 도를 배우게 하시나이다.
제1독서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독서 2,11-3,14
의인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형제 여러분, 2,11 게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책망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12 그의 책망받을 일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게파가 이방인 교우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들어오자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 나갔습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게파와 함께 물러 나갔고 심지어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14 나는 그들의 행동이 복음의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게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유다인이면서 유다인같이 살지 않고 이방인같이 사는 당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15 우리는 본래 유다인이고 이른바 ‘이방 죄인’은 아닙니다.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가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란 말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8 만일 내가 전에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는 스스로 법을 어긴 사람이 될 것입니다. 19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

3,1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왜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분의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미혹시켰단 말입니까? 2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성령의 힘으로 시작한 일을 지금 와서 인간의 힘으로 마치려 드는 것입니까? 4 여러분이 겪은 그 모든 경험이 다 헛일이었단 말입니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5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6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도 믿기만 하면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성서는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아 만백성이 복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미리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10 성서에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꾸준히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은 언제나 저주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11 그러니 율법을 통해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살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2 율법은 믿음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다만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것을 지킴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13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1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고 또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응송갈라 2,16. 21b
사람이 의화되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도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화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도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의화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일이 될 것이로다.
우리는.
제2독서
오리게네스 사제의 창세기에 대한 강론에서 (Hom. 8,6. 8. 9: PG 12,206-209)
아브라함의 제사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했다.”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손수 지고 가는 이사악은 당신 자신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고 가는 것은 사제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희생 제물이시고 또 사제이십니다.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했다.”라는 앞의 인용도 이것을 뜻합니다. 제사를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이 불씨와 칼을 챙겨 들고 갈 때 이사악은 뒤에서 걷지 않고 아브라함과 나란히 걸었고, 이렇게 하여 자신도 아버지와 동등하게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사악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순간에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는 아브라함에게 있어 유혹의 목소리입니다. 번제물로 바쳐질 어린것의 소리를 들을 때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굳어져 있었다 해도,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그 목소리로 “얘야! 내가 듣고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사악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도 애정 어리고 조심스런 아브라함의 대답은 정말 감동적인 대답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라고 말할 때 현재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물어 보는 아들에게 미래에 대해 대답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서 그에게 어린 양을 마련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주님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여기 이 말씀을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께 대해서 하는 다음 말씀과 비교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죽음에 내어 주셨다.”라고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겨루시는 그 인자가 얼마나 위대한 지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기로 되어 있었지만 죽지 않은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께서는 죽으실 수 없는 아드님을 온 인류를 위해 죽음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이사악은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숫양 한 마리도 어느 정도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봅니다. 죽임당하지 않은 이사악과 죽임당할 숫양이 둘 다 어떤 면으로 그리스도를 표상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말씀께서는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 당하실 때 육신으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실 때 육신으로 당하셨습니다. 이 숫양은 그 육신 안에서의 수난과 죽음의 예표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 대해 “보라,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영에 따라서 볼 때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죽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악은 죽지 않으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희생 제물이시고 또 영에 따라 볼 때 대사제이십니다. 육신을 따라 아버지께 제사를 바치시는 분은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스스로 바쳐지셨습니다.
응송요한 19,16-17a; 창세 22,6a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도다.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웠도다.
몸소.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여, 비오니, 당신의 가족인 우리를 항상 자애로이 지켜 주시며, 천상 은총만을 바라고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보호를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 다음의 환호를 덧붙인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