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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바오로(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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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정하상 바오로 (丁夏祥 Paul)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회장, 신학생,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95-1839년
같은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정 바오로, 정바오로, 파울로, 파울루스,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정하상 바오로(179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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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굿뉴스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30 조회수1037 추천수3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정하상 바오로(1795-1839)

 

 

사제의 길을 미리 걸었던 신학생 정하상

 

정하상 바오로는 누구인가? 103위 성인의 평신도 대표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첫 번째 신학생으로서 혼인하지 않고 미리 사제의 길을 걸어가며 모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앵베르 주교(제2대 조선대목구장이자 조선 땅을 밟은 첫 주교이다)가 1838년에 쓴 편지에서 자신이 4명의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고 2명에게는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3년 뒤에는 조선 땅에서 서품식을 거행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였다. 라틴어를 배우고 있다는 2명 중 첫 번째가 바로 정하상이다.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을 ‘정약종의 아들로 독신을 지키며 신학 공부를 하는 북경 파발꾼’으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로는 42세 된 우리의 북경 파발꾼인데 여전히 독신으로 있으며 우리 세 선교사를 조선에 인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1801년 박해 때에 자신을 천국으로 보낼 칼날을 보겠다고 해서 (하늘을 보고) 눈을 뜬 채 참수를 당했던 영광스러운 순교자 정 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정하상 바오로입니다. ... 저는 조선말을 공부해 가면서 이들 네 명에게 매일 2시간씩 강의를 하는데, 이것은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올여름에 이들은 (라틴어) 글을 읽는 일에 좀 익숙해졌습니다. ... 앞의 두 명에게 ... 신학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 3년만 있으면 서품식을 거행할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천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갓 태어난 이 교회를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해주시기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 신부들에게 보낸 서한, 1838.11.30.)

 

정하상은 아버지 정약종이 순교할 때 어머니 유선임과 함께 옥에 갇혀 있다가 고향 마재로 돌아가 어머니 곁에서 성장하였다. 마재의 정씨 일가는 천주교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면서 조카인 정하상을 외면하였다고 한다. 정하상은 혼인하라는 집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독신을 지켰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구전으로 전해 듣는 교리 지식으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멀리 함경도 무산(茂山)으로 유배 간 조동섬 유스티노를 찾아가 한문을 배우기도 하였다. 

 

정하상은 박해로 아버지와 형을 잃고 힘든 생애를 살아갔건만, 아무리 이치를 따져보고 생각을 다시 해 봐도 자신의 아버지만큼이나 천주가 계심을 확신하게 된다. 정하상은 천주가 이 세상에 계시다는 것을 이 세상 만물과 사람의 양지(良知)와 성경에서 찾았다. 만물을 보면 천주가 계시다는 확신이 들고, 내 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양심을 들여다보면 천주가 계심을 알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품 공부를 배우면서 읽은 성경에서 하느님 말씀을 직접 들었을 것이다. 정하상의 믿음은 자신이 순교 전에 쓴 <상재상서>(上宰相書)에서 엿볼 수 있는데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목숨 바쳐 증언한 것처럼 자신도 확신에 차 신앙을 증언하였다.

 

“금(金)은 산지(産地)에 관계없이 순금이냐 아니냐에 따라 보배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가려지고, 종교는 그 지역에 관계없이 거룩하냐 거룩하지 않느냐에 따라 참된 종교인지 아닌지가 가려집니다. 그런데 어찌 이러한 종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 이 나라 저 나라에 경계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굳건한 믿음을 지녔던 정하상은 조선 땅에 선교사를 인도하기 위해 조선과 북경을 오가는 파발꾼이 되었다. 그가 스스로 이러한 힘겨운 길을 걸은 이유는 조선 땅에 다시 선교사가 들어와 성사(聖事)가 거행되고, 세상의 주인을 알아보는 참된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복음을 가르치는 사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던 것이다.

 

 

조선대목구 설정의 주역

 

정하산 바오로는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조신철 가롤로와 함께 조선대목구 설정의 주역으로 ‘평신도 삼총사’라고 부를 수 있다. 조선대목구 설정은 평신도들의 노력과 파리외방전교회의 브뤼기에르 주교의 자발적인 지원과 열정이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평신도 삼총사’는 북경을 수차례 오가며 조선 신자들의 뜻을 전했다. 정하상이 처음 북경으로 떠난 것은 그의 나이 만 21세 때인 1816년 겨울이었다. 당시 그가 북경을 찾았을 때 그곳에 있던 선교사들은 용감하고 젊은 조선의 밀사를 보고 조선 교우들의 열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북경대목구장 주교는 1817년 초에 두 선교사를 선발하여 조선에 파견하였으나 모두 조선 땅을 밟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정하상은 선교사를 인도하는 역할을 지속하였고 그 과정에서 역관 출신의 유진길을 만나게 되었다. 유진길은 1822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한 대목을 보고 입교하였다가 정하상을 만나 뜻을 합하여 여러 차례 북경을 오가며 정하상과 함께 로마 교황에게 직접 청원서를 발송하게 된다. 바로 이 편지가 교황청에 전달되어 후에 조선대목구 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신철은 동지사의 마부로 일하던 중 1826년에 정하상, 유진길을 만나 북경에서 성사를 받고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하상과 유진길이 조선 교우들의 이름으로 교황에게 올린 서한은 마카오를 거쳐 라틴어로 번역된 뒤, 1827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 전달되었다. 이 편지는 당시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의 마음을 움직였고, 뒤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되심으로써, 1831년 9월 9일 마침내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정하상의 활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선교사들이 입국할 수 있는 경로를 자세히 설명하고, 1834년 1월 중국인 선교사 유방제(여항덕) 파치피코 신부를 직접 맞이하여 한양에 있는 자신의 집에 모셨고, 모방 · 샤스탕 · 앵베르 주교님을 차례로 모셔오게 된다. 정하상에 대한 증언기록에는 그가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서 생쌀을 먹고 다녔다고 한다. 북경을 7, 8차례 아니 그 이상 다니면서 발은 얼마나 터지고 몸은 얼마나 피로했겠는가?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생쌀을 먹으며 성직자 모시기를 기대했었고 그의 노력으로 유방제(여항덕) 신부와 파리외방선교회 주교와 사제들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순교자 정하상

 

1839년 초에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북경을 오가던 정하상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정하상은 박해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국왕에게 천주교가 올바른 종교임을 호소하는 <상재상서>라는 글을 남겼다. 정하상은 <상재상서>에서 마지막으로 임금에게 호소하였다.

 

“목숨을 바쳐 순교함으로써 성교가 진실된 가르침을 증명하여, 천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으로 삼는 일이옵나이다. 죽음에 임하여 용감히 말해야 할 때에 한 번 고개를 들고 크게 외쳐 보지도 못하고, 말없이 불쌍히 죽으면, 쌓이고 쌓인 회포를 백년 뒤에까지 스스로 밝힐 길이 없사오니, 엎디어 빌건대 밝히 굽어살피사, 도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그르고 바름을 가리옵소서.”

 

정하상은 1839년 7월 11일 가족,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정하상의 문초가 시작되었고 의금부로 이송되어 추국(推鞫)을 당하게 되었지만 조금도 동요하거나 나약한 신심을 보이지 않았고, 대질 신문을 받는 중에도 교회나 신자들에게 해가 되는 말은 전혀 입 밖에 내지 않고 당당히 천주교를 믿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정하상은 아버지(정약종)가 하늘을 보며 칼을 받던 그 장소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 나갈 때 수레 위에서 기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고 <기해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정하상은 사제가 되지 못하고 평신도로 삶을 마감했지만, 김대건 신부보다 앞서 신품성사를 준비했던 신학생이자 설교가였고 선교사들의 훌륭한 복사였다. 독신을 지키며 복음의 가르침을 목숨으로 증거한 정하상 바오로는 사제의 길을 미리 걸어간 사제의 모범이 되었으며, 자신이 배운 모든 가르침과 지식, 그리고 두 다리로 조선 땅에 선교사들을 데려오고 대목구가 설정되는데 공헌한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다운 가장 위대한 한국의 순교 성인 가운데 한 분이시다.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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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석 (leemindol) 쪽지

    이 글을 읽으니 대학원에서 <상재상서>를 주제로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구요. 위에서 인용된 <상재상서> 구절을 다시 마음 속에 새기는 기회와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삶을 다시 한번 묵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9/03  
  • 임형진 (hjyim) 쪽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9/09/03  
  • 남혜란 (teragata) 쪽지

    얼마 전 마재성지를 방문하며 복자 정약종 순교자가정의 모범을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특별히 정하상 바오로성인의 삶과 순교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2019/09/04  
  • 김희정 (maria091219) 쪽지

    지난 8월 31일 마재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참된 신앙의 여정에 가톨릭 사랑방 일원들과 함께 해주소서 아멘.

    2019/09/04  
  • 이상선 (ss460815) 쪽지

    어제 빗속을 뚫고, 서소문 역사박물관 컨솔레이션에서 공연하는 정하상을 관람하였다. 우라 신앙 선조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뜨겨워 지면서 감사의 눈물이 나곤 한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림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태도를 지닐 수 있는지... 그 믿음의 당당함이란..... 우리가 빚의 속도로 따라간다고 티끌 만큼이라도 따를 수 있을지 감히 엄두가 안난다. 다시 한번 우리의 현재를 돌아본다. 그대 있음에 우리 후손들은 뿌듯하고 감사하다.

    2019/09/05  
  • 김영종 (greymantle) 쪽지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갔을 때에, 잘 정돈된 순교자들의 기념관이 기억이 납니다. 그에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순교자들. 주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 선종하신 많은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정하상 바오로는 최초의 신학자이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연 제게 그러한 수난이 닥쳤을 때에, 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겁이 납니다. 정하상 바오로께서 여러 수난을 겪고있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의 뜨거운 주님을 향한 사랑을 본받아 이웃에게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우리와 함께, 정하상 바오로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이 또한 우리와 함께하기를.

    2019/09/06  
  • 정호근 (jhksc) 쪽지

    두꺼운 성인전을 읽은 후 보다 요약된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표양으로 다가옴은 말할나위 없고, 마재나 천진암 등 성지를 순례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성스러움을 새삼 마음에 새겨봅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19/09/07  
  • 이상선 (ss460815) 쪽지

    500자 이내로 ....에 가늠하기 힘들어 정작 하고픈 말을 못해서 몇자 더 추가합니다. 사실 정하상 성인이 사제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너무 놀랍기도 하고 조금 이해가 더 되는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이제야 이런 사실을 안다는 것이 늦었더라도 참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금과종교를 대비시키는 이런 지혜가 또한 놀랍기만 합니다. 더 많은 성인들의 행적이 알려져 저희가 접할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요..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08  
  • 김미영 (meeyou39) 쪽지

    9월 순교성월을 맞이하여 '순교자의 나라'라는 가톨릭 역사소설을 읽다가, 거기에 나오는 분들을 한 분씩 검색해 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선조들의 삶을 묵상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