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사무엘은 히브리인들이 판관 시대의 느슨한 동맹 체제에서 중앙집권적 왕정 체제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기원전 11세기에 활약했다. 사무엘은 히브리어로 ‘쉬무엘’이고, ‘하느님의 이름’ 또는 ‘그의 이름은 하느님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당시 유대인 남자가 맡을 수 있는 지도자 역할, 즉 제사장 · 판관 · 예언자 · 군대 지휘관 등을 모두 맡은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이자 예언자로서 그는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던 신정(神政)정치를 사람이 다스리는 왕정(王政) 체제로 바꾸는 역할을 맡았다. 사무엘 상권 1-16장에 나타난 사무엘의 활동은 그래서 주로 사울(Saul) 왕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살던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 엘카나에게는 한나와 프닌나라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한나는 주님께 간절히 빌어 아들을 얻고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1,1-20). 그리고 주님께서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나지르인으로 하느님께 바치겠다(1,11)고 서원한 대로 아이가 젖을 떼자 주님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주님께 바쳤다(1,28). 어린 사무엘은 사제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었다(3,1). 어느 날 밤 소년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는 불경한 아들들을 둔 엘리 집안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다. 이 부르심은 또한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로서 활동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3장). 4-6장은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해 계약의 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가문이 멸망하고, 실로 성소가 파괴된 내용이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서 계약의 궤를 돌려받은 후에 사무엘은 판관이 되어 미츠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경고하였고, 필리스티아인들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였다(7장). 그는 이스라엘의 판관으로서 죽는 날까지 백성을 다스렸는데, 해마다 베텔과 길갈과 미츠파를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런 다음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 거기에서도 판관으로 일하며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7,17).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지자 자신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판관으로 임명하고 브에르 세바를 다스리게 했다(8,1-2). 이어서 서로 다른 왕정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사무엘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 그중 하나이다(9,1-10,16). 한편 또 다른 성경 구절(7,3-8,22; 10,17-27; 12,1-25)에서는 백성들이 직접 투표로 사울을 왕으로 선택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사무엘은 왕정 설립 요청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요 왕이신 주님을 배반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마지못해 왕정 설립에 동의하였다. 사무엘은 특히 고별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명령을 절대 거역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만일 여전히 악행을 일삼는다면 백성과 임금 모두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12장). 15장에 보면 사무엘과 사울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갈라졌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않았고, 주님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일을 후회하셨다(15,35). 이러한 내용은 앞선 성경 구절(13,13-14)에 이미 나와 있다. 16장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미래의 왕이 될 이사이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고, 다윗과 함께 나욧으로 내려가 있던 사무엘을 찾아간 사울이 그 앞에서 예언 황홀경에 빠져 버린 이야기(19,23-24)를 비롯해 사무엘은 죽은 후(25,1)에도 혼백으로서 계속해서 사울의 왕정사에 등장하고 있다(28장). 사무엘은 많은 부족함에도 늘 자기 생각과 판단에 앞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노력했다. 후대에 사무엘이 모세와 함께 언급될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전한 주님의 말씀에 끝까지 충실했기 때문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0일 목록에서 유다 땅에 거룩한 예언자 사무엘이 있었는데,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의 성유물을 아르카디우스 황제(395~408년 재위)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옮겨 셉티무스(Septimus) 근처에 보관했다고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의 유해가 406년에 발견되어 팔레스티나에서 칼케돈(Chalcedon, 소아시아 북서부에 있던 고대 도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군중 속에서 장엄하게 콘스탄티노플로 이장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베네치아(Venezia)로 옮겨져 오늘날까지도 성 사무엘 성당에서 공경받고 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판관이 된 예언자 성 사무엘을 기념하는데, 그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을 백성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고, 사울이 불신앙으로 주님께 버림받은 후에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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