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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박대식 빅토리노 묘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죽어서도 선산에 못 묻히고 남의 문중 산에 평장으로 누워
지번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산30(책골) 
전화번호 (055)345-3226
팩스번호 (055)345-3227
홈페이지
전자메일 c1jl@cathms.or.kr
관련기관 진례 성당    
관련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223번길 7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1812-1868년)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사람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다음에는 언제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1868년의 박해 때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과 김해 포졸들이 함께 그의 집으로 몰려와, 박 빅토리노와 그의 조카 박수연을 체포하여 김해 관아로 압송하였다. 당시 그의 조카는 아직 예비 신자였다.

김해 관아의 옥에서 박 빅토리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이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였기에 3일 만에 대구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대구 감사는 결국 박 빅토리노와 그의 동료들을 결코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박 빅토리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박대식 빅토리노의 나이는 56세였다.

참수형을 집행한 다음,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명분으로 그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게 하였다. 한편, 박 빅토리노의 가족은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구로 와서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 [출처 :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박대식 빅토리노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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