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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 묘재(성 남종삼 요한 · 순교자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유택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순교자 남상교와 성 남종삼 부자의 신앙이 서려 있는
지번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326-1 
도로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제원로10길 15-7
전화번호
홈페이지
관련기관 용소막 성당    (033)763-2343
관련주소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성 남종삼(南鍾三) 요한(1817-1866년)
 
유택에 걸려 있는 성 남종삼 요한 모자이크화.
성 남종삼 요한(Joannes)은 충주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남상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통정대부의 중직을 맡고 있었지만, 신앙생활에 방해가 됨으로 관직을 떠나 살던 인물이다. 남 요한은 1838년인 헌종 4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관 교리, 영월 현감, 영해 부사 등을 거쳐 승정원의 승지까지 지냈다. 이러한 그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물론 부친의 영향이 컸겠으나 무엇보다도 학자인 그 자신이 학문을 통하여 신앙을 크게 꽃피웠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그가 지은 “천주가사”를 통하여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신앙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만일 신앙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물러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관직과 신앙생활을 겸하던 남 요한은 나라의 공식예절이 있을 때마다 조상 숭배행위에 참여해야 하였으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편 남 요한이 관직에서 떠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가문의 생계를 꾸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세속의 관직 때문에 당시의 선교사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며 성사까지 막힌 경우가 있었으나, 방인사제이신 최양업 신부와의 교분으로 그의 신앙생활은 크게 진보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영해 군수로 있을 때에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지방의 관리가 향교의 제사에 참석치 않는다고 말썽이 생기자 그는 즉시 사표를 낼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 사실 그는 관료생활과 신앙생활을 병행시키는 생활을 했었다.
 
그 후 그는 생활이 궁하였으므로 또 다시 승지가 되었다. 1866년 러시아 배 한 척이 함경도 국경을 넘나드니 대원군은 북경에 와 있는 프랑스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이때 천주교인들에게 호의를 가진 대원군 부인 민씨가 조선에 와 있는 프랑스 선교사에게 의뢰하기 위해서 남 요한을 불러 천주교에 관해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눈 후 장 베르뇌 주교를 대궐로 모셔다가 그분에게 이 일을 맡기자고 하였다. 남 요한이 장 주교를 찾아 나섰을 때 장 주교는 이미 서울을 떠난 후였다. 평안도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장 주교는 급히 서울로 올라왔으나, 그때는 이미 러시아인들이 물러간 후였으므로 러시아의 침략 위험은 저절로 사라진 때였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자 흥선 대원군은 다시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1866년 3월 1일 남 요한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그는 조정에 있는 세 명의 대신들로부터 문초를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남 요한이 이를 거절하자 심한 고문과 곤장을 맞고, 천주교를 신봉한 죄목으로 참수형이 결정되었다. 그의 사형은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집행되어 장렬하게 순교하니,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성인사전]
 
 
남상교(南尙敎) 아우구스티노(1783-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성인 남종삼(南鍾三)의 아버지. 충청북도 제천군 백운면 화당리(忠北 堤川郡 白雲面 花堂里) 출신.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충청목사(忠淸牧使), 돈령부사(敦寧府使)를 역임한 그의 입교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는 않으나 일찍부터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을 지켜온 것 같다. 그의 아들 남종삼이 이른바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大院君)에 진언한 사실을 말했을 때, “너는 충성스러운 국민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너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네 사형선고 서명을 요구하면 천주교에 욕된 표현을 일체 지우도록 명심하라”고 하며 천주교 신앙에 대한 굳은 신념을 보였다. 아들이 서소문 네거리에서 순교하자 그는 고향에서 잡혀 공주(公州)감옥에 수감되었다가 84세의 고령으로 아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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