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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절두산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강변에 우뚝 선 신앙의 파수꾼
지번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6-1 
도로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전화번호 (02)3142-4434
팩스번호 (02)335-0213
홈페이지 http://www.jeoldusan.or.kr
문화정보 사적 제399호(양화나루, 잠두봉 유적)

절두산 순교 기념비를 조각하고서

 

1. 시작하는 말

한 시대를 살고 간 큰 인물들은 그 자취를 뭇사람의 가슴에 새기고 떠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가슴에 새겨진 그 인물을 다시 돌에 새겨서 아름다운 그들의 삶을 기린다. 우리 교회가 대희년을 지내던 2000년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 간에 걸쳐서 절두산에서 순교한 분들 33명은 자신이 순교했던 그 자리에 높이 8m, 두께 4m, 폭 10m, 총 무게 250톤이나 되는 돌에서 다시 태어났다. 절두산 순교 현양비가 세워진 것이다. 믿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그분들은 상주(尙州) 산 화강암에 재현되어 나갔다.

상주 쑥돌은 수정(水晶)이 자라 기포가 많고 큰 구멍도 가끔 있다. 흑운모(굵은 검은 점)와 검은 긴구름(우라) 무늬도 있지만, 붉은 색을 띠는 홍장석 입자가 굵어 돌의 색깔이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워 순교자의 기념탑을 제작하는 소재로 적당했다. 이러한 돌은 섬세한 조각보다는 거친 터치의 작품에 더 잘 어울린다. 이 돌의 외곽에 드로잉 선들의 변화를 주면서 단순한 면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소박한 인상이 강해지고 붉은 돌은 순교자 얼굴에 빛을 더해 주리라.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

현양비를 제작하던 4개월간 컴퓨터 조감도를 4번 작성했고, 여덟 차례에 걸쳐서 모형을 제작했다. 그 작품의 초점인 절두상(切頭像)을 확정하는 데에 네 차례의 모형작업을 시도해야 했었다. 이 작품은 상주(尙州) 부근의 화북 면소로부터 2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진 외딴 산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작품의 제작을 대부분 채석장 현장에서 진행했다. 채석장의 오두막에 기거하며 4개월을 지냈다. 핸드폰마저 터지지 않고 간이 화장실마저 없는 오지에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작품에 전념했다. 늦장마와 태풍, 그리고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추석 때문에 작품 제작에 애를 많이 먹었다. 장마 때는 채석장 인근의 배부른 개울소리가 요란했다. 초가을의 태풍이 몰아칠 때 그 엄청난 폭풍 때문에 작업장의 텐트를 고정시켰던 못이 빠져 총알처럼 석공의 귓가를 스쳐갔던 아찔한 장면도 이젠 거짓말처럼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채석장 맞은쪽의 견훤산성 돌담이 보이는 하늘 높은 날이면, 속리산의 가을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함을 금할 수 없었다. 가끔은 내 작품에 쓸 돌을 산봉우리를 폭파해서 산허리에 있는 작업장까지 중장비로 굴려 운반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마치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그 현장에서 나는 이 자연파괴가 과연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갖기도 했다. 250톤이 넘는 현양비를 서울로 옮길 때는 차의 하중을 초과해서 중량위반을 감수해야 했다. 큰돌을 운반하기 위해 차폭을 늘렸으므로 차선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현양비는 야밤중의 도둑질처럼 한 밤에 조심스럽게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마음 졸인 기억은 아마 꽤 오래갈 것이다.


2. 작품 설명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가운데 자리잡은 '큰칼' 모양의 작품은 주탑(主塔)이다. 주탑의 정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우측탑(右側塔)에는 절두(切頭)된 머리가 올려져 있다. 이 탑의 이름은 '절두탑'으로 불려도 좋을 것이다. 이는 이곳에서 순교가 있었음을 말함과 동시에 이곳의 지명이 절두산임을 암시해준다. 주탑의 왼쪽에 있는 좌측탑은 일종의 오벨리스크 형식으로 제작되어 이곳에서 순교했을 또 다른 무명순교자들을 조각해 넣었다. 주탑과 우측탑에는 모두 33명의 순교자들이 늙지도 변하지도 않을 화강석 육체를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 이 작품의 세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의 주탑(主塔)은 높이 8m, 가로 5m, 세로 4m 중량 150톤이다. 기념탑의 상부에는 조선시대 죄수들이 목에 썼던 형틀인 '칼'을 상징하는 조각을 했다.

그리고 주탑의 하부에는 16명의 순교자를 새겨 넣었고 그 순교자들의 머리 위에는 아치(arch)형으로 이름을 새겼다. 그들의 인체는 내가 그동안 제작해 왔던 4등신 또는 5등신 비례를 적용했다. 이 비례를 통해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을 특히 중히 여겼던 단순 질박한 성격을 담아 보고자 했다. 순교자들이 모두 엇비슷한 신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이 천주교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 '평등한' 인간으로 이미 태어났음과 아제 순교자로서 성인들과 '대등한' 기꺼움을 하늘나라에서 누리신다는 뜻을 함께 상징한다.

주탑의 오른쪽 옆면에는 '전구(轉求)하는 성모'를 선으로 처리하여 새겨 넣었다. '전구하는 성모님'의 변형(deform)된 손에는 인위적인 테크닉이 최대한 절제되었다. 이 절제감으로 번잡한 현실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치유되는 이미지를 제공하고자 했다. '전구하는 성모'를 조각한 화강석은 자연의 본질 자체이다. 이로서 화강석에 새겨 넣은 반구상(半具像)의 모습에서 기도하는 마음, 세속적 일상에서 벗어난 마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주탑의 왼쪽 옆면은 '부활한 예수'를 각인했다. 이는 가로 1m 40cm, 세로 2m 40cm 크기로 되어 있다. 예수의 부활은 성서의 중심 내용인 동시에 순교자들이 믿었던 신앙의 핵심이었다. '부활한 예수'가 자유를 주는 단순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 준다. 이 부활한 예수 앞에서 우리 자신은 새로운 화두를 계속하여 자신의 미숙함을 성숙시켜 나갈 것이다. 형틀을 받치고 있는 주탑의 뒷기둥의 옆쪽에는 높이 8m에 폭 3m 60cm 두께 1m가 넘는 '전구하는 성모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새겨 넣었다.

주탑의 뒷기둥에는 현대 추상화를 조각화해 보았다. 그 곧게 뻗은 기둥은 형태가 없는 형태, 있었던 형태가 사라진 곳, 마음대로 자유로운 창의의 언어가 오가는 통로를 상징하고 있다. 주탑의 재질은 바윗돌이다. 이는 자연의 인내와 침묵을 담고 있어, 자연으로 가는 정확한 길을 안내해 주며, 설교 없는 설교를 하고 있다.

주탑의 전체는 모래 위에 파도가 만든 모래톱 자욱처럼 처리했다. 그리하여 자연에 바탕한 그 자욱(터치)을 소재로 하여 현양비를 캔버스로 삼아서 그 공간에 그림을 그리듯 조각해 나갔다. 주탑의 뒷면에는 절두산에서 순교한 것으로 밝혀진 33명의 명단을 도표로 만든 '절두산 성지 순교자 명단'을 새겼다. 이 명단은 전문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서 각종 교회기록을 참고하여 작성했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더 많은 순교자가 이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이름을 밝힐 수 있는 이들의 명단만을 제시했다.

우측탑은 절두탑이다. 이 탑의 상부에 있는 절두상(切頭像)은 사실 이 순교현양 기념비의 중심 테마다. 순교자의 잘린 머리는 탑 위에서 오늘의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 이 절두상의 부릅뜬 한 눈은 탑의 중심이다. 이 부릅뜬 눈으로 무거운 화강석 기념탑은 지탱되고 있다. 그리고 그 눈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기를 경계한다. 우리는 쉴 겨를 없이 매일 죽음을 체크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고 그리스도님은 말씀하셨다.

부릅뜬 눈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부활에 대한 확신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현실을 확실히 경계하면서 미래에의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는 기다리는 눈이다. 또 다른 한 눈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눈물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참 믿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겨레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연민의 눈물이다. 회개의 연속인 삶만이 의미를 가지므로, 그것은 그침 없는 자기 회개와 정개(定改)의 눈물이다. 그 특이한 두 눈은 신망애를 상징하며, 우리에게 그 순교와 자기 비움의 신비를 기억케 할 것이다.

우측탑 하부의 정면과 양면에는 신문 과정에서 배교했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순교의 길을 간 신앙의 선조들을 표현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치명자인 남편 김진(베드로)를 따라 닷새 후에 순교하신 김큰아기 순교자의 상을 비롯하여 열세 분의 상이 새겨져 있다. 우측탑의 윗면에는 조광 교수가 짓고 김단희 선생이 쓴 '절두산 순교기념비문'이 있다.

좌측탑은 길이가 5m, 가로가 2m 30cm, 세로가 1m 60cm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관찬 기록에 등장하는 무명인 4명을 비롯하여, 힘없는 농부, 상인, 노비들의 신앙을 기억하고자 했다. 이 탑은 병인박해 과정에서 순교한 많은 치명자들을 위한 '무명순교탑'이다. 그 감동적 비문에 쓰여진 바대로 박해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순교자로 드날리는 영예마저도 하느님께 봉헌하고 무명 순교자로 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었고, 진정으로 큰 인물이었다. 이들을 기억하면서 무명의 우리도 우리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짐하기 위해서 이 '무명순교탑'을 만들었다.


3. 작가의 변

일본 시인 가지마 쇼조는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자신과 계속해서 만나는 일이다"라고 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난 지 어언 60여 년이 되었고, 미술에 빠져들어 50년을 지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로서, 조각가로서, 또 골초 애연가로 각각 40여 년의 연륜을 쌓았다. 붉은 물에 발을 넣으면 붉은 발이 되듯이, 이 나의 발자취는 내가 신자이고 조각가이며 골초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성격이 드러나게 되었다. 성격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맞는 개념들이 오가지만 성격의 본질은 진리처럼 변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있어서 성격은 작업을 하는 데에 실제적인 힘을 주고, 창의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 성격은 작가의 변하지 않는 독자적인 사상으로, 작가의 창조적 작업에 본질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작가에 있어서는 신앙생활도 그 성격대로 실천된다. "성격이 팔자다"라는 속언(俗言)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살아오는 동안 시간 약속에 대해서는 투철하고자 했고, 일에 대해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나의 언행이 직선적이어 이웃에게 상처 준다는 느낌 때문에 가능한 한 인간관계를 피해보기도 했다. 그 직선적인 사고방식은 내 작품의 거칠은 터치를 낳았고, 그래서 내 작품에는 섬세한 여성스러움이 없다는 평을 받는가 보다. 인간의 독특한 성격이 상징화되어 예술 문화가 공간에 펼쳐진다. 사물은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 역시 실체와 같은 심리 작용으로 반(半) 고체성(固體性)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공간은 무의식에서 공허감을 충만시키고 초월해 나가면서 강한 실존의식을 갖는다. '사물은 무존재인데 어디에 티끌이 끼겠는가'하는 해탈 언어를 그 공간에서 찾게 된다. 예술작품도 형상과 배경의 공유 현상을 갖는다. 여기에는 역설과 모순의 상징성이 없다면 그 작품의 효과는 무디어 지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상징 언어도 인류의 모든 질문에 답이 되지 않는가! 예술은 종교에서 태어났고 야훼께서 인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체는 예술의 시작이고 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각가는 그 인체를 조각하면서 하느님의 창조에 뒤늦게 참여했다.

그러나 구약이나 신약에는 인체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체는 상징 언어 중 으뜸이고 기도의 매체이다. 인체는 성미술에서 일관성을 띄고 서로 통합하는 힘의 상징이다. 단순화된 상징은 복잡한 내재상태를 잘 판단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거와 같다. 물러선 거리만큼 사물은 단순화된다. 단순화된 사물은 크기가 같고 통일된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잠재력을 집중시키며, 긴밀한 결합을 더 강하게 한다. 그리하여 순교자의 상도 역동적 구조를 갖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 방법을 활용했고, 가능한 한 단순화된 인체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 새긴 인체는 역동적 구조를 갖게 한다. 각 순교자 상의 핵심은 기도하는 손에 두었고, 이로써 그들의 신앙 고백을 드러냈다. 순교자의 인체를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함께 순교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순교자와 함께 서서, 함께 하느님께 예속된 순교의 의지를 다져가고자 했다. 우리가 그 순교자와 같은 서민적 소박함과 순종함을 이어 받아야 건강한 진실을 볼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순교자 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모습과 말씀이 물질적 소재와 상호 작용하여 우리 상상력의 형태를 규정한다. 그리고 순교자와 함께 하는 우리의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재긍정적 인식을 갖게 하며, 우리를 또 다른 순교자로 만들어 간다. 이로서 오늘의 우리는 순교자들로부터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나는 3년 전부터 금연을 내걸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회가 오면 더 빨리 담배를 찾다가 이젠 담배 피우는 사람을 소재로 드로잉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품을 하면서 여기에 재현되는 순교자들 가운데 몇 분은 틀림없이 담배를 피웠으리라 생각하면서 친근감을 더했다. 그러나 순교자에 대한 나의 친근감은 담배 때문에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들을 새기면서 그들의 믿음살이와 살림살이에 동참했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며 사귀었다. 이것이 묵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나의 친구로 다시 태어났다. 아니, 내가 그들의 친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건 생각을 나누건 간에 이제 그들 모두는 우리 곁으로 친근한 미소를 띄며 접근하게 되었다. 나는 완성된 작품 앞에서,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 새로 태어난 순교자처럼, 우리도 성숙되기를 기도하며 2000년 대희년의 의미도 생각해 보았다. [출처 : 순교자 현양, 2001년 4-5월호, 이춘만 크리스티나(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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