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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 성거산(소학골)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박해시대의 사목 중심지, 순교자들의 본당 소학골
지번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2 
도로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전화번호 (041)584-7199
팩스번호 (041)584-7189
홈페이지 http://sgms.zerois.net
전자메일 cjp-sgms@hanmail.net
문화정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성거산 성지의 순교자들

 
소학골에 박해의 풍파가 몰아 친 것은 서양 선교사들(리델, 페롱, 칼레 신부)이 중국으로 출국한 후 얼마 안 되어서였다. 포졸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신자들은 풍비박산하여 도망하였으나,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형제와 칼레 신부의 복사를 한 배문호(베드로), 고 요셉, 채 서방 며느리 등은 교우촌에 남아 있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포졸들은 즉시 이들을 공주로 압송하였고, 5명 모두 공주 영문(營門)의 옥중에서 교수형을 받아 1866년 12월 14일(음력 11월 8일)에 순교하였다. 이 5명의 순교자들은 절두산 성당에 보관중인 병인박해 치명자 명단 509-513호에 나오는 분들이다. 순교 후 이들의 시신은 청주 절골에 사는 신자 강치운 씨에 의해 거두어져 소학골에 안장되었다. 그 후에도 소학골에서는 다시 몇몇 신자가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절두산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병인박해 <치명일기>에 기록된 순교자 5분의 신앙생활과 옥중생활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천여(베드로)
 
충정도 목천 소학골에 살면서 열심히 묵상기도와 염경기도를 하며 늘 치명의 뜻을 가지고 살았다. 병인년 10월 10일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잡혀 관청에 끌려 들어가 천주학을 배반하도록 권유를 당하였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자, 다시 투옥 옥중에 들어가 갖은 고문과 박해를 당하였다. 그러면서도 심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한 교우들을 찾아다니면서 '금세는 잠깐이요 후 세의 세계는 영원하니 어찌 잠시 살기 위해 배반하느냐.'며 눈물을 흘리며 설득시키다가 당시 나이 52세로 병인년 음력 11월 8일 치명하였다.
 
최종여(라자로)
 
최 베드로(천여)의 아우로 목천 소학골에서 그 형과 함께 열심히 수계생활을 하다가 병인년 10월 10일에 목천 포교에게 잡혔다. 혹독한 역병으로 거의 사경에 이르러 스스로 걸어가지 못하니 포교들이 목을 매어 끌고 본관으로 가 며칠 갇혔다가 공주 진영으로 가서 형 베드로와 같이 11월 초파일에 나이 42세로 치명하였다.
 
배문호(베드로)와 고 요셉
 
이 분들은 충청도 목천 소학골에 살았고, 열심히 수계 생활하며 부모에게 배우고 믿음을 다졌다. 하옥된 후 옥에서 계명을 풀어 읽으니, 이것을 누구한테 배웠으며 믿음은 얼마나 되느냐 대답하며 저는 죽어도 천주학은 배반하지 못하겠다 하며 관가에 들어갔다. 치명하기를 원한 배문호는 아내와 의논하고 뜻을 지키며 강 신부가 주신 철사 띠를 주야로 항상 띠고 다녔으며, 강 신부로부터 고신극기를 배우고 따라다니며 강 신부의 복사생활 하였다. 병인년 10월 초파일에 목천 포교에게 고 요셉과 함께 잡혀 관가에 들어가 배주배교(背主背敎 :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종교를 배반하는 것)하라 하였다. 만만코 죽사와도 절대 배반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십계명을 풀어 이야기하니 '그것을 누구에게 배웠으며, 믿음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믿음은 '부모에게 배우고 믿음은 아직도 다하지 못 했나이다.'고 말하니 즉시 하옥 2차, 3차 물고문에 형벌이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계속 천주를 배반하라 명하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조만과를 서로 통경하니 경문히 자신만만하였다. 순상(順喪 :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먼저 죽는 일) 분부에 공주로 보내 11월 초파일에 끌려가면서도 경문(經文 : 기도할 때 외는 글)을 소리 높여 읽었다. 창교배(인솔자)도 즐겨 듣고, 배교한 사람도 이 모습을 보고 즉시 통회하고 따라 합세하여 공주 진영(鎭營)에 들어가 갖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굴하지 않자 즉시 옥에 하옥 병인년 11월 초파일에 치명하니 배문호 24세였고 고 요셉 나이는 알지 못 하였다.
 
이때 모친에게 3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어머님도 뒤를 따라 오소서. '동곳'(머리를 감아 상투 꽂는데 필요한 기구)을 보시며 저를 생각해 주소서. 나와 고 요셉은 이곳 감영에서 너무 목말라 오줌으로 푸나이다." 하였다.
 
채씨 며느리
 
위의 네 분과 함께 공주에서 같은 날 순교하였지만 치명일기에는 이름만 나와 있다. 채씨 며느리는 순교자 최천여의 며느리로 보고 있다. 이 5분의 시신은 당시 청주 절골에 사는 순교자 최천여의 사돈뻘 되는 강치운이 이곳 소학골에 묻었다고 한다.
 

<치명일기>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병인박해 치명자사적> <우포도청 등록>의 자료로부터 병인박해 때 순교한 소학골 출신 신자들이 서울 포도청에서 순교한 분들은 다음과 같다(한국 교회사 연구소 차기진 씨의 ‘한국 교회사 사적지 재발견’에서)
 
1. 배 (바오로) : 배 안드레아의 부친, 목천 소학골 거주, 서울에서 치명, 62세(또는 61세) 1868년 6월 23일(또는 1867. 6. 19).
2. 배 (안드레아) : 배 바오로의 아들, 서울에서 치명, 35세 1878년 4월 10일.
3. 배화첨(베드로) : 배문호 조부, 면천 사람, 목천 소학골 거주, 서울에서 교수형, 56세 1868년 5월 17일.
4. 배명중(바오로) : <우포도청등록>의 배원성, 배화첨의 차남, 목천 소학골 거주, 공주 질울로 이주, 서울 좌포도청에서 치명(致首), 54세(또는 50세) 1878년 5월 23일(또는 1878. 4. 10).
5. 배문모(요한) : <우포도청등록>의 배일용, 배명주의 아들, 좌포도청에서 치명(致首), 19세 1878년 5월 23일.
 

3명의 성직자들을 중국으로 탈출시킨 11명의 교우들이 순교
 
병인박해 때 한국 천주교회는 12명의 성직자 중 9명의 성직자가 체포되어 순교하고, 3명(페롱, 칼레, 리델) 신부가 난을 피해 신창군 용당포에서 배를 이용하여 중국으로 탈출하게 되었다.
 
첫 번째 탈출은 리델 신부였다.
11명의 용감한 교우들이 배를 마련하여 병인년 6월 29일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에 신창 용당포를 출항하여 7월 7일 중국 해안에 도착 천진으로 가서 프랑스 함대를 만나 함장 로즈(Rose) 제독에게 한국의 박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두 번째 탈출은 칼레, 페롱 신부였다.
프랑스 함대가 조선 해안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교우들의 협조로 배를 마련하여 프랑스 함대가 와 있다는 곳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함대를 찾지 못하고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이때 신부들을 배로 탈출시키고 돌아온 교우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는데 이들이 순교 후 성거산에 모셔졌다고 한다.

[출처 : 성거산 성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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