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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 우곡(홍유한 묘)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국교회 최초 수덕자 홍유한 선생과 후손 순교자들의 안식처
지번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151-2 
도로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전화번호 (054)673-4152
팩스번호 (054)673-7094
홈페이지
관련기관 홍유한 피정집(청소년 수련원)    
관련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성지 입구에 건립된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 선생 동상과 십자가.경상북도 봉화군 문수산(1206m) 중턱의 우곡리(愚谷里) 골짜기 안에는 한국 교회 창립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스스로 그 가르침을 고요한 가운데 실천한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다.
 
농은 홍유한(隴隱 洪儒漢, 1726-1785년)은 서울 아현동에서 홍창보(洪昌輔)의 아들로 태어났다. 풍산 홍씨(豊山 洪氏) 가문은 정조 임금의 외가인 혜경궁 홍씨의 친정 집안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발휘했던 그는 이미 8, 9세에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백가제서(百家諸書)에 통달하여 신동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6세 때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했다. 1750년경부터 이익 선생의 제자들과 교유하며 함께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등 서학(西學)을 연구할 때 홍유한은 유학이나 불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천주학의 가르침 안에 숨어 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했다.
 
성지 입구 피정집 맞은편에 조성된 홍유한 후손 순교자들의 가묘와 순교자 현양비.깨달은 바가 남달리 컸던 홍유한은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할 것을 결심하고 서울의 살림을 정리하여 1757년 충청도 예산 여촌(餘村)으로 이주하여 18년간 “칠극”에 따른 천주교의 수계생활(守誡生活)에 정진하였다. 고요한 가운데 참 진리를 따라 살았던 그는 1775년 더 깊은 믿음을 위해 경상북도 소백산(1439m) 밑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九邱里)라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다블뤼(Daveluy) 주교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듯이 홍유한은 천주교 서적을 몇 권 읽고, 축일표도 기도서도 없었지만 매월 7 · 14 · 21 · 28일 등 7일째 되는 날을 주일(主日)로 정하고 세속의 모든 일을 접어두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또한 금식재(禁食齋)와 금육재(禁肉齋)를 지키는 정확한 날을 모르는 대신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규칙을 삼았다. 동시에 육욕을 금해 30세 이후에는 정절의 덕을 실천했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동안 정조 임금이 두 번이나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사양했다. 고행과 절식,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낸 그는 1785년 3월 10일(음력 1월 30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 해 4월 문수산 자락에 있는 우곡리에 안장되었다.
 
2014년 11월 홍유한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기존의 성당을 칠극 성당으로 명명하였다.그가 만년에 이르러 10년간 살았던 구구리에는 그의 자취가 서려 있는 유택지가 있고, 이곳에는 경종 4년(1724년) 홍유한의 조부인 홍중명(洪重明)이 임금에게 하사받은 효자문 현판이 가보로 내려오고 있고, 권철신과 주고받았던 홍유한의 친필 서찰들이 후손에 의해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는 천진암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록 그는 세례를 받고 교적에 오른 공식적인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학문 연구를 통해 얻은 진리에의 깨달음을 실제 자신의 삶속에서 실천한 경건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뜻을 이어받아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후손들이 13명이나 된다. 그 중 2명(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은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해 시성되었고, 5명(홍낙민 루카, 강완숙 골룸바, 홍필주 필립보, 홍재영 프로타시오, 심조이 바르바라)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후손들의 순교 여정을 보면, 1801년 신유박해 때 홍유한 선생의 인척인 홍정호와 재종(再從) 조카인 홍낙민 루카(洪樂敏, 1751-1801년),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1752-1801년) 신부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한국 최초의 여성회장으로 선교활동에 앞장섰던 강완숙 골룸바(姜完淑, 1761-1801년)와 그의 아들 홍필주 필립보(洪弼周, 1774-1801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 임금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동생 홍낙임(洪樂任, 1741-1801년) 등 5명이 순교하였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 선생의 묘비. 묘소 뒤에는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1839년 기해박해 때는 홍낙민의 셋째 아들 홍재영 프로타시오(洪梓榮, 1780-1840년)가 전주에서 참수되었고, 그의 며느리 심조이 바르바라(沈召史, 1813-1839년)와 두 살 난 홍[아기] 베드로는 전주 감옥에서 옥사하였으며, 홍재영의 부인 정조이(丁召史)도 이때 순교한 것으로 문중에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홍낙민의 손자인 홍병주 베드로(洪秉周, 1798-1840년)와 홍영주 바오로(洪永周, 1801-1840년) 형제가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홍재영의 아들인 홍봉주 토마스(洪鳳周, ?-1866년)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고, 그의 아들 홍 베드로는 1867년 가을 전주 초록바위에서 수장되었다.
 
이에 홍유한 선생 후손들은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하고자 했으나 유해를 찾을 길 없어 고심하다가 안동교구와 협의하여 선조인 홍유한 선생의 묘가 있는 우곡 성지에 13위 순교자들을 모두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2009년 5월 29일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13위 순교자들이 순교한 각 순교터의 흙을 담아 가묘를 조성하고 그 앞에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웠다. 이로써 우곡리의 골짜기는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 순교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후배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 거룩한 땅이 되었다.
 
이에 앞서 안동교구는 1993년 우곡리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인 홍유한 선생의 묘를 발견하고 이듬해 성지개발위원회를 발족하여 1995년 묘지 축복식과 유적비를 건립하고 순차적으로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했으며, 1998년 11월 15일에는 홍유한 피정 집과 사제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2000년 10월 25일에는 청소년들의 신심 교육과 성지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청소년 수련원 겸 성당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2005년 9월 25일에는 우곡 성지 성역화 10주년을 맞아 대형 십자가와 홍유한 선생 동상을 세워 축복식과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2014년 11월 1일에는 홍유한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기존의 성당을 칠극 성당으로 명명했고, 성당 앞 계곡 건너편에 칠극의 길을 조성하여 2015년 9월 20일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비석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6일)]

농은 홍유한 선생 동상에서 바라본 성지 입구.2015년 새로 조성된 칠극의 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바일용 요약 설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경상북도 봉화군 문수산 중턱의 우곡리 골짜기 안에는 한국 교회 창립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스스로 그 가르침을 고요한 가운데 실천한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나 신동이라는 평판을 얻었던 그는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6세 때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1750년경부터 이익의 제자들과 교유하며 함께 “천주실의”와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하면서 유학이나 불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천주학의 가르침 안에 숨어 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했습니다.

홍유한은 깨달은 바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1757년 충청도 예산으로 이주하여 18년간 “칠극”에 따른 천주교의 수계생활에 정진했습니다. 1775년 그는 더 깊은 믿음을 위해 경상북도 소백산 밑의 단산면 구구리로 들어갔습니다. 축일표도 기도서도 없었지만 매월 7일째 되는 날을 주일로 정해 세속의 모든 일을 접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으며,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는 정확한 날을 모르는 대신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습니다. 고행과 절식,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낸 그는 1785년 세상을 떠나 우곡리에 안장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세례를 받은 공식적인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학문 연구를 통해 얻은 진리를 자신의 삶속에서 실천한 경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뜻을 이어받아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후손들이 13명이나 됩니다.

이에 후손들은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하고자 했으나 유해를 찾을 길 없어 고심하다가 안동교구와 협의하여 선조인 홍유한 선생의 묘가 있는 우곡 성지에 13위 순교자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2009년 5월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13위 순교자들의 순교 터에서 흙을 담아와 가묘를 조성하고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우곡리의 골짜기는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 순교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후배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안동교구는 1993년 우곡리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인 홍유한 선생의 묘를 발견하고 이듬해 성지개발위원회를 발족하여 1995년 묘지 축복식과 유적비를 건립하고 순차적으로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했으며, 1998년 11월 15일에는 홍유한 피정 집과 사제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00년 10월 25일에는 청소년들의 신심 교육과 성지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청소년 수련원 겸 성당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2005년 9월 25일에는 우곡 성지 성역화 10주년을 맞아 대형 십자가와 홍유한 선생 동상을 세워 축복식과 기념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015년 9월에는 홍유한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칠극의 길을 조성하여 비석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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