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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 홍천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1950년대 석조 성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지번주소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105 
도로주소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마지기로 54
전화번호 (033)433-1026
팩스번호 (033)432-7997
홈페이지 http://cafe.daum.net/hccatholic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2호
필립 크로스비(Philip Crosbie, 조선희) 신부(1915-2005년)
 
일제 때 강제출국을 당하고 6.25 때 체포되어 죽음의 행진까지 겪은 뒤 다시 돌아와 홍천 성당을 지은 크로스비 신부.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필립보. 한국명은 조선희. 1915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Victoria) 주 멜버른(Melbourne)에서 출생하였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신학교(St. Columban’s Essendon)를 마친 뒤, 아일랜드의 달간(Dalgan)에 있는 선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12월 21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일본을 거쳐 부산을 통해 입국하여 1940년 11월에 홍천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이 독일 ·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가담하기로 결정한 무렵이므로 선교 활동에 제한이 많았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춘천 지목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신부를 비롯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춘천 감옥에 갇혔다. 1942년에 아일랜드의 중립적 위치가 인정됨에 따라 각자 자기 본당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사목 활동은 금지된 채 춘천에 가택 연금되었다가 결국 5월에 본국으로 강제 출국당하였다. 해방 후 1947년 2월에 다시 입국하여 홍천 본당 주임 신부를 맡아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봉직하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인 6월 27일에 북한군이 홍천으로 진격해 왔고 29일에는 성당으로 들이닥쳤다. 성당은 북한군이 머무는 숙소로 빼앗겼으며, 결국 크로스비 신부는 7월 초에 춘천으로 압송되어 지목구장 퀸란 신부 일행과 함께 7월 16일에 서울로 보내졌고 다시 기차 편으로 후송되어 21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 뒤로 다른 포로들과 함께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에서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겪게 되었는데,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의 행군 과정에서 많은 사제와 포로들이 사망하였다. 크로스비 신부는 평양에서 중강진 · 만포진 · 고산 · 초산리 · 하창리 등의 포로 수용소를 거친 끝에 1953년 5월 다시 평양으로 송환되어 기차로 모스크바로 보내진 뒤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갔다.
 
1954년 8월 한국에 다시 입국하여 1962년까지 홍천 본당의 10대 · 12대 주임 신부를 맡아 결운, 송정, 내촌면의 물걸리 등 3개 공소를 15개 공소로 늘리고 12동의 공소 강당을 신축하는 등 교세 확장에 크게 힘썼다. 전쟁 직후이므로 구호 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가톨릭 구제회(N.C.W.C) 등의 후원을 받아 성산 공소 등 공소 강당을 구호 활동의 장소로 활용하였다. 그 밖에 포천 본당(1969. 12-1975. 8), 간성 본당(1976-1986), 원통 준본당(1986. 2-1989. 3)을 거쳐 1989년 4월부터 신남 준본당 주임 신부로 있다가 1990년 12월에 은퇴하였다.
 
은퇴한 뒤에도 보속을 위한 피정의 집을 준비하여 1993년 5월 강원도 인제군 부평리에 ‘게쎄마니 기도의 집’을 세워 피정 지도를 하였다. 1998년 11월 12일 83세의 고령으로 본국인 오스트레일리아로 귀국하여 2005년 3월 24일 고향 멜버른에서 9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출처 : 최선혜,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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