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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야고보(샤스탕 야고보)(9.20)

정 야고보(샤스탕 야고보)(9.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정 야고보(샤스탕 야고보) (鄭 James(Chastan James))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3-1839년
같은이름 샤스땅,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쟈크, 정 야고보, 정아각백, 정야고, 제임스
성인 기본정보

   성 자크 오노레 샤스탕(Jacques Honore Chastan) 신부의 한국 성은 정(鄭)이고, 이름은 본명인 야고보(Jacobus)를 한문으로 음차하여 아각백(牙各伯)이라 하였다. 그는 1803년 10월 7일 프랑스 디뉴(Digne) 인근에 있는 마르쿠(Marcoux)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앙과 공부에 열성적이었던 그는 1823년 디뉴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곳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3년 만인 1826년 12월 23일 사제품을 받고 해외 선교를 자원하여 이듬해 1월 1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선교사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1827년 5월 동양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료와 함께 보르도(Bordeaux) 항구에서 프랑스를 떠나 그해 말에 코친차이나(지금의 남부 베트남)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에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가 있는 마카오에 도착했고, 다시 말레이반도의 페낭(Penang) 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마카오에 머물 때 조선 포교지를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선 선교를 자원했으나 바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페낭에서 5년 정도 교수로 활동해야 했다.

   1832년 7월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주교가 조선 대목구의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다시 한번 조선 선교를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1833년 5월 페낭을 떠나 마카오에 도착한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11월에 복건(福建)에서 얼마 전에 조선 선교를 자원한 성 모방 베드로(Maubant Petrus) 신부를 만난 뒤 요동을 거쳐 만주에 도착해 조선 국경까지 갔으나 조선 교회의 밀사들을 만나지 못해 입국하지 못했다. 그래서 1834년 8월부터 약 2년 동안 산동(山東) 지방에 머물며 중국인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며 지내다가 1836년 초에 조선에 입국한 성 모방 베드로 신부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산동을 떠나 그해 12월 말에 책문(柵門)에서 조선 신학생들을 데리고 온 조선 교회의 밀사 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Paulus) · 성 조신철 가롤로(趙信喆, Carolus) · 성 이광렬 요한(李光烈, Joannes) 등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1837년 1월 1일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어렵게 조선에 두 번째로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가 된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감격하여 “나는 천주의 영광을 위하고 사람들의 구원과 특히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할 것이므로 어떤 일이라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회가 오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통을 감수할 힘을 주님께 기대합니다.”라고 벅찬 기쁨을 토로했다. 상복 차림을 하고 15일을 걸어서 서울에 도착한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성 정하상 바오로의 집에 머무르다가 성 권득인 베드로(權得仁, Petrus) 회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조선말을 배웠다. 그는 2개월 정도 고해성사를 위한 “성찰규식”(省察規式)을 외워 조선말로 신자들에게 첫 고해성사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부활 대축일을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성 모방 베드로 신부와 함께 지내며 선교 의지와 각오를 새롭게 하고, 성 모방 베드로 신부가 조선의 남쪽 지방을 맡는 대신 그는 북쪽 지방을 맡아 사목하기로 했다. 이들의 활발한 노력으로 조선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1837년 7월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심한 열병에 걸린 성 모방 베드로 신부를 위해 서울로 돌아왔고, 그에게 병자성사를 주었다. 다행히 3개월 뒤에 성 모방 베드로 신부가 건강을 회복했고, 그때부터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남쪽 지방 교우촌을 순회하며 성사를 주고 회장을 임명하는 등 선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해 말에 제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Imbert Laurentius) 주교가 조선에 입국했고, 이듬해 5월에야 비로소 서울로 와서 주교를 만난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다시 남쪽 지방으로 가서 전교에 힘썼다. 이렇게 한 명의 주교와 두 명의 선교 사제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1836년 초에 6천여 명 미만이던 조선의 신자수가 1838년 말에는 9천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1839년 기해년이 시작되면서 조정은 다시금 천주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배교자의 밀고로 세 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기해박해가 본격화하자 신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자수를 결심했고, 주교의 명에 따라 두 선교사 신부는 일단 충청도의 교우촌으로 피신하였다. 얼마 후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홍주(洪州) 교우촌에서 성 모방 베드로 신부와 헤어져 전라도의 한 교우촌으로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신자들을 위해 자수를 권유하는 주교의 편지를 받고 성 모방 베드로 신부와 함께 포교에게 자수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 선교사는 비로소 포도청 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형벌과 문초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의연하게 신앙을 고백했다. 조선 정부는 그들이 절대 배교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고 마침내 대역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군문효수형에 처하도록 판결하였다. 처형 장소는 한강 변의 새남터로 결정하였다.

   1839년 9월 21일,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자 세 선교사는 팔을 뒤로 결박당한 채 가마를 타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형장에 이르자 포졸들은 선교사들의 옷을 벗긴 다음 손을 앞가슴 쪽으로 결박하고, 겨드랑이에 긴 몽둥이를 꿰고, 화살로 귀를 뚫고, 얼굴에 회를 뿌린 다음 군중의 조롱과 욕설을 듣게 하였다. 그런 다음 사형 선고문을 읽고 칼을 들어 처형하였다. 성 샤스탕 야고보와 성 모방 베드로 신부 그리고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는 마지막까지 태연하게 하늘을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그들의 순교로 조선 교회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성직자들을 3년 만에 모두 잃게 되었다. 이때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의 나이는 성 모방 베드로 신부와 같은 35세였다.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와 두 선교사의 시신은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20일 뒤 죽음을 각오한 신자들에 의해 노고산(서울시 마포구 노고산동 서강대 뒷산)에 매장되었다가 1843년 삼성산(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산57-1)으로 이장되었다. 그 후 1901년 10월 21일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고, 그해 11월 2일 명동대성당에 안치했다가 1967년 절두산 순교성지 내의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지하에 마련된 성인 유해실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한국 순교성인’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1일 목록에서 새남터에서 신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순교의 길을 걸은 파리 외방전교회의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와 성 샤스탕 야고보와 성 모방 베드로 신부가 한국의 새남터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의 축일은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경축하고 있다.♣

참고자료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3 - '성 야고보 샤스땅',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207-216쪽.
  • 샤스탕 저, 샤스탕 신부 서한, 하남(수원교회사연구소), 2019년.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11장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163-197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1장 한국 천주교의 유래 - 초대 주교와 전교 신부(브뤼기에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21-5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 - '샤스탕, 자크 오노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9년, 4281-4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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