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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부르가(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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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노트부르가 (Notburga)
축일 9월 1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하녀, 동정녀
활동지역 라텐베르크(Rattenberg)
활동연도 1265?-1313년
같은이름 노뜨부르가, 노뜨브르가, 노트브르가
성인 기본정보

   성녀 노트부르가는 1265년경 독일 남부 티롤(Tyrol) 지방의 작은 마을인 라텐베르크에서 모자를 만들어 파는 가난한 직공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신앙 안에서 자란 그녀는 18살이 되었을 때 그 지방 백작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실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주인과 동료들의 모범이었던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또한 깊었다. 그래서 백작 부인의 허락을 받고 남은 음식을 매일 같이 찾아오는 걸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때로는 자신이 먹을 음식까지 아껴가면서 선행을 베풀었다. 백작의 첫 부인이 죽은 후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오틸리아(Ottilia)는 매우 인색한 사람이라 성녀 노트부르가의 행동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남은 음식을 걸인에게 주지 말고 모두 돼지에게 먹이도록 했다. 가난한 이를 돕지 못해 낙심한 그녀는 주인의 허락 없이 음식을 내어줄 수 없기에 자기가 먹을 음식을 아껴서 몰래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특히 재계를 지키는 금요일이면 더욱 극기하며 자선을 베풀었다. 하지만 오틸리아는 자신의 집이 걸인들의 집합소가 된다며 아예 성녀 노트부르가를 쫓아냈다.

   그녀의 성품을 알고 고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성녀 노트부르가는 전 주인의 체면을 생각해 어디에도 응하지 않고 에벤(Eben am Achensee)이란 농촌의 작은 농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녀는 농장주에게 매일 저녁 삼종기도를 위한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게 해달라는 조건을 두었고, 농장주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는 매일 저녁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주일과 대축일 미사를 충실히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가을, 수확이 한창일 때 저녁 삼종 소리와 함께 그녀가 일손을 놓자 주인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성녀 노트부르가는 성당에 가지 못하게 막는 주인에게 그러면 더는 일을 계속할 수 없다며 들고 있던 낫을 밭으로 던졌다. 그런데 그 낫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그대로 떠 있었다. 깜짝 놀란 주인이 성당 가는 것을 허락하자 그제야 낫이 땅에 떨어졌다. 이런 일화로 인해 낫은 성녀 노트부르가의 상징이 되었고, 교회 미술에서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낫과 곡물 다발 등과 함께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성녀 노트부르가가 라텐베르크 성(城)을 나와 에벤의 농장에서 일한 지 오래지 않아 오틸리아 부인이 중병에 걸렸다. 그녀는 이 소식을 듣고 농장주의 허락을 받아 성에 가서 정성을 다해 부인을 간호해주었다. 결국 오틸리아는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신자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는데, 라텐베르크 성에는 불행이 그치지 않았다. 성주는 후처와 의논해서 성녀 노트부르가를 다시 불러오기로 했고, 그녀는 가난한 걸인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그들을 내쫓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로 백작의 불행은 멈췄고, 성녀 노트부르가는 백작 가족의 후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성안의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었다.

   여생을 하녀로서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성녀 노트부르가는 1313년 9월 14일 평화로이 선종했다. 그녀는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수레에 시신을 태워 그 소가 멈추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 장례가 끝나고 그녀의 유해를 모신 소는 평소 그녀가 기도하던 성당으로 향했고, 그녀의 유해는 에벤의 성 루페르토(Rupertus)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62년 3월 27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는 소작농과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히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과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과 슬로베니아 등지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에벤의 성녀 노트부르가’로도 불린다. 성녀 노트부르가의 생애에 대한 문서 자료는 오늘날까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단편적으로 나무판 등에 기록된 내용이 전해질 뿐이다. 이런 이유로 옛 “로마 순교록”은 성녀 노트부르가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녀 노트부르가는 티롤 지방 에벤 마을의 동정녀이자 가정부로서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농부들에게 성덕(聖德)의 모범으로 남았다.”라고 칭송하며 9월 14일 목록에 그녀를 추가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녀 노트부르가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03-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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